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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전무 / 全無 [역사/근대사]
미상∼1926년 3월.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1923년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토요회(土曜會) 조직원, 조선공산당 중앙총국 국내부 산하의 청년뷰로에서 간부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1924년 신흥청년동맹에서 활동하며, 한양청년연맹 조직원이 되었다. 1925년 전소전
전병찬 / 田炳瓚 [역사/근대사]
1915-194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경상북도 울진(蔚珍)이다. 1939년 10월 28일 남복이(南福伊)·남정성(南精性)·남원수(南源壽)·노하순(盧夏淳)·임시헌(林時憲)·전만수(田萬秀)·전원강(田元江)·주영석(朱永錫)·주진욱(朱鎭煜) 등과 함께 경상북
전상국 / 田相國 [역사/근대사]
1907-1938. 독립운동가. 일명 이상국(李相國). 황해도 신천 출신. 1931년 2등비행사 자격으로 중국에 망명하여 동지의 권유에 따라 즉시 중국 공군(空軍)에 들어가 배운 기술을 연마하였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중국 본토가 전란상태로 빠져
정도홍 / 鄭燾洪 [역사/근대사]
1878년(고종 15)∼미상. 조선 말기의 의병장. 전라남도 나주(羅州) 봉황면(鳳凰面) 칠전(七田)에서 태어났다. 1908년(융희 2) 고향 마을에 창의소를 설치하고,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600여 명이 참여하여 심남일 부대와
정태봉 / 鄭太鳳 [역사/근대사]
1893년(고종 30)∼1942년.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다.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자금모집 요청서를 받아 국내에서 군자금모집에 종사하였다. 김두환(金斗煥) 등 10여명과 연합하여 경상도 일대의 부호명단을 작성하고 금품을 모집 하였고, 1
조경남 / 趙慶男 [문학/고전산문]
조선시대 『난중잡록』, 『속잡록』 등을 저술한 의병장. 전라북도 남원 출생. 아버지는 사직 조벽(趙璧)이며, 어머니는 남원 양씨이다. 삼학사(三學士)의 심양(瀋陽) 순절소식에 충의를 읊기도 하였다. 사후 주포서원(周浦書院)에 향사됐다. 13세 때인 1582년(선조 15
조만식 / 曺晩植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82-?). 3·1운동에 참가했으며,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회장이 되어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다. 조선일보사 사장에 추대되어 언론을 통한 민족운동에 앞장섰고, 백선행기념관을 세워 기독교정신의 실천가로 활동했으며, 조선민주당을 창당해 당수
조병옥 / 趙炳玉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94-1960). 한인회·흥사단 등의 단체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했다. 신간회 창립위원·재정총무를 역임하기도 했으며 광복을 맞이해 한국 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청의 경무부장에 취임, 치안 유지와 공산당 색출에 진력하기도 했다. 저서로
조병준 / 趙秉準 [역사/근대사]
1862년(철종 13)∼1931년. 한말의 의병장‧독립운동가. 자는 유평(幼平), 호는 국동(菊東), 평안북도 의주 출신이다. 을미사변 후 평안도의병장으로 각지에서 항전하였고,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항일전을 전개하다 외지로 망명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단(大韓獨
조병채 / 趙炳彩 [역사/근대사]
1878-1950. 독립운동가. 일명 병채(秉彩). 충청남도 청양 출신.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의 독립군총사령관 김좌진(金佐鎭)이 파견한 천경수(千景洙)를 만나 군정부를 위한 군자금 모집을 의뢰받고, 1920년부터 김영진(金瑛鎭)·김상수(金相秀)·유기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