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총 10,287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조선
백구사 / 白鷗詞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모두 79구. 벼슬에서 쫓겨난 처사가 대자연 속을 거닐면서 아름다운 봄날의 경치를 완상하는 내용이다. 『청구영언』과 『가곡원류』에 실려 전하며, 『남훈태평가』에도 비슷한 내용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백구사」는 장단은 도드리이고, 모두 8절로
백담문집 / 栢潭文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구봉령의 시문집. 14권 6책. 목판본. 본집은 1645년(인조 23) 풍기군수 김계광이 편집·간행하였고, 속집은 1691년(숙종 17) 이유수와 김성구가 간행하였다. 본집에는 권두에 홍여하의 서문과 권말에 유동준의 발문이 있고, 속집에는 김굉
백담집 / 白潭集 [종교·철학/유학]
조우신의 문집. 동활자본, 서:홍상민(1724), 발:조심(1783), 정종로(1807), 4권2책. 권1에는 장문의 시제 「천계이년임술칠월기망범주동강동유범이십오인이적벽부종두분운차제점지득자자」를 비롯한 시 124수, 만 26편, 권2에는 제문14편을 수록하였다.곤책 ‘
백대붕 / 白大鵬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위항시인(委巷詩人). 천인의 신분으로 시를 잘 지어 이름을 날렸다. 언제 출생하였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유희경(劉希慶)·정치(鄭致)와 함께 노닐었다는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보거나 허봉(許篈)·심희수(沈希洙) 등과 더불어 터놓고 사귀었다는 『학산초담(鶴
백동연죽장 / 白銅煙竹匠 [예술·체육/공예]
담뱃대 만드는 일 및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 중요무형문화재 제65호. 우리나라에서는 백동을 두드려 펴고 땜질하여 백동죽을 만드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으므로 이에 관한 세공솜씨가 뛰어났다. 따라서 순동이나 아연 합금의 놋쇠로는 담뱃대를 잘 만들지 않았다.구리와 니켈
백동촛대 / 白銅─臺 [예술·체육/공예]
조선시대의 백동촛대. 높이 77.5㎝, 받침지름 29.5㎝.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등경(燈檠)과 촛대의 구실을 겸하게 만들어진 것으로서, 수반(水盤) 모양의 받침 밑에 굽이 달리고 여기에 고리가 달린 서랍이 붙어 있다.가운데 줄거리에는 4단의 턱을 만들어 등잔받침
백두산기 / 白頭山記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에 홍세태(洪世泰)가 지은 기행문. 그의 문집인 『유하집(柳下集)』 권9에 수록되어 있다. 작자가 직접 백두산을 답사하고 쓴 것이 아니고, 김경문(金慶門)이라는 역관(譯官)으로부터 전해들은 국경선 확정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백두산기」는 처음에는 백두산과 청나
백두산유록 / 白頭山遊錄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박종(朴琮)이 지은 기행문. 저자의 문집인 『당주집 鐺洲集』 권14 유록(遊錄)에 실려 있다. 「백두산유록」은 갑신년 여름 신공(申公)과 함께 5월 14일 을축에 산천도(山川圖) 한 장과 책 몇 권만 가지고 떠나 돌아오기까지 왕복 1,322리를 18일이나
백두산정계비도 / 白頭山定界碑圖 [지리/인문지리]
1712년 청나라의 목극등이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때 소지했던 지도. 세로 21cm, 가로 32cm. 필사본. 백두산은 조선의 조산(祖山)으로 일찍부터 신성하게 여겨졌고 청나라도 만주 지역에서 건국하였기 때문에 만주를 성역화하고 백두산을 중히 여겼다.1712년 청나라의
백련리도요지 / 白蓮里陶窯址 [예술·체육/공예]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에 있는 조선시대 분청사기·백자·청자 등을 굽던 가마터.시도기념물. 경상남도 기념물 제24호. 요지 면적 7,456㎡. 사기마을과 마을 뒷산에 4개의 가마터가 있는데, 이중 1개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며, 나머지 3개는 분청사기와 백자를 굽던 조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