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근대 총 3,894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근대
고용석 / 高龍錫 [역사/근대사]
1895-1950.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치현(穉賢)이다.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출신지는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북이면(北二面) 모현리(募峴里)이다. 의병장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의 14세손이다. 타고난 성품이 명민하였으며, 항상 나라 잃은 설움에
고용주 / 高墉柱 [역사/근대사]
1865-1930. 일제강점기 유학자·교사. 자는 현중(玄仲), 호는 봉계(鳳溪)이며, 본관은 장택(長澤) 또는 장흥(長興)으로, 출신지는 전라남도 구례(求禮)이다. 소천 왕사찬과 매천(梅泉) 황현(黃玹)에게 사사하였다. 1903년(광무 7) 고종황제에게 시책(試策)
고용진 / 高龍鎭 [역사/근대사]
1850년(철종 1)∼1922년.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운서(雲瑞), 호는 송재(松齋), 본관은 장흥(長興),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다.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강회(講會)를 가장하고 의병을 일으키자, 포수 30여명을 이끌고 의병으로 들어갔다. 1912년
고웅주 / 高雄柱 [역사/근대사]
1923-19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강원도 정선군(旌善郡)이다. 춘천중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재학 중 동학생이던 한인학생들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38년 학교 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상록회(常綠會)가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회원 전
고원군읍지 / 高原郡邑誌 [지리/인문지리]
1899년에 편찬된 함경남도 고원군 읍지. 2책. 필사본. 제1책에는 읍지내용이 서술되어 있고, 제2책은 고원군의 채색지도로 구성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방리(坊里)·도로(道路)·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형승(形勝)·관직(官職)·산천(山川
고원탄전 / 高原炭田 [경제·산업/산업]
함경남도 고원군 산곡면·수동면·운곡면에 걸쳐 있는 탄전. 동서로 약 18㎞, 남북 약 5㎞로, 90㎢의 넓이를 차지하고 있다. 탄층 두께는 평균 95㎝이나 0.12∼20m로 편차가 크다. 석탄은 부점결성 무연탄에 속한다. 대부분 채탄시 분말화한다. 조성은 회분 10%
고원화류가 / 故園花柳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규방가사. 비교적 근래의 작품으로 보이며, 분량은 모두 4·4조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모두 280구이다. 내용은 어린 초목의 근본이 한 뿌리와 한 가지에서 시작하여 점차 천만 가지로 번성해 가듯이, 우리도 근본이 같은 조상의 자손이요, 또 내 아무리
고원훈 / 高元勳 [역사/근대사]
1881-미상. 민족항일기의 정치인·체육인. 1881년 3월 경상북도 문경군 양면 신전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7월 일본의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하고, 1911년 8월 조선총독부의 경부(警部)로 채용되었고, 1913년 5월 보성전문학교 교수, 1922년에
고유섭 / 高裕燮 [예술·체육/회화]
항일기의 미술사학자(1905∼1944). 호는 우현(又玄). 경성제국대학 미학연구실의 조수로 근무하면서 고대 미술품 조사와 연구에 힘썼다.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해 박물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우리 미술사 연구에 주력했다. 주요 논문은 대부분
고유제홀기 / 告由祭笏記 [정치·법제]
궁(宮)에서 고유제를 설행할 때 진행 순서를 적은 홀기. 배면에 '계축(癸丑) 10월 11일 진시(辰時)'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1913년 10월 11일에 고유제가 설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왕직에서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