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 조선 후기 6,844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조선 > 조선 후기
  • 예송 / 禮訟 [종교·철학/유학]

    조선 현종때 복상 문제를 놓고 일어난 싸움.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때문에 서인과 남인 사이에 2차에 걸쳐 싸움이 일어났다. 1659년 효종이 죽자 효종의 모후 자의대비의 복상문제에 대해 송시열과 송준길은 기년복 1년을 주장했고, 윤휴와 허목은 3년복을 주장했다. 예송은 처

  • 예암서원 / 禮巖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에 있는 서원. 1709년(숙종 35)에 향중 사림들이 사우당(四友堂) 조이추(曺爾樞, 1661∼1707)의 행적을 기려 예암사(禮巖祠)를 창건하였다. 1822년(순조 22)에 예암서원으로 이름하였다. 1869년(고종 6)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 예양서원 / 汭陽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예양리에 있는 서원. 1620년(광해군 12)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색(李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8년에 신잠(申潛)과 김광원(金光遠)을 추가 배향하고 1681년에 남효온(南孝溫), 1683년에 유호인(劉

  • 예연서원 / 禮淵書院 [교육/교육]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구례(求禮)에 있는 서원.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1호. 1674년(현종 1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곽재우(郭再祐)와 곽준(郭䞭)의 덕행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77년(숙종 3)에 ‘예연(禮淵)’이라고 사액되어

  • 오경원 / 吳慶元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64∼?). 1783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영희전참봉·해주판관·금산군수 등을 거쳤다. 1829년 불치죄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역사에 밝았으며, 고려·조선과 명나라와의 교섭사실 등을 기술한《소화외사》를 저술하였다.

  • 오계서원 / 迂溪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에 있는 서원. 1665년(현종 6)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덕홍(李德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24년(경종 4)에 이시(李蒔)를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 오관서원 / 五冠書院 [교육/교육]

    경기도(현재의 개성직할시) 개성시 내리정(內梨井) 오관산(五冠山)의 남쪽 기슭에 있었던 서원. 1682년(숙종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상충(朴尙衷)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85년에 ‘오관(五冠)’이라고 사액되었으며, 그 뒤 박세채

  • 오광운 / 吳光運 [종교·철학/유학]

    1689(숙종 15)∼1745(영조 21). 조선 후기의 문신. 정한 증손, 할아버지는 시봉, 아버지는 상순, 어머니는 안후열의 딸이다. 1719년 증광 문과 병과로 급제하였다. 수찬, 교리, 동부승지, 대사헌, 대사간,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약산만고』가

  • 오국헌 / 吳國獻 [종교·철학/유학]

    1599(선조 32)∼1672(현종 13).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산립, 어머니는 양사귀의 딸이다. 김장생의 문인이다. 병자호란의 치욕이 있은 뒤에는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사서해의』2권, 『역계해의』1권,『잡저』3권,『유후귀감』3권이 있었

  • 오군영 / 五軍營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 수도 및 그 외곽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다섯 군영. 임진왜란 이후 설치된 군영들로서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은 수도를 직접 방어하는 중앙군영이며, 총융청·수어청은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등 수도 외곽의 방어를 담당하는 군영이었다.

페이지 / 685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