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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후기
  • 영덕향교 / 盈德鄕校 [교육/교육]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개리에 있는 향교. 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14년 향교 자리에 영덕공립보통학교를 신설하면서 향교의 대성전과 명륜당을 교실로 사용하게 되자 화개

  • 영동향교 / 永同鄕校 [교육]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부용리에 있는 향교. 조선 선조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60년(현종 1)에 성내(城內)로 이건, 복원하였다. 1676년(숙종 2)에 다시 구교리로 이전하였

  • 영릉지문 / 寧陵誌文 [언론·출판]

    저자 송시열(1607-1689). 필사본. 책의 구성은 1책 40장 이다. 이 책은 <영릉지문>, <남초가>, <수락산의게 고한 제문>, <궁촌묘디명>, <유명됴션국수녹태우행니조판셔겸판의금부사디경연사홍문관대졔학예문관대졔학지춘추관셩균관사셰졔좌빈격오위도총부도총관 옥오재송공

  • 영물근체시 / 詠物近體詩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위항시인 유재건이 사물을 제재로 지은 영물시만을 모아 편찬한 시집. 32권 11책. 필사본.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근체시 가운데 새·꽃·달·고기 등 사물을 제재로 지은 영물시만을 제재별로 409문으로 분류한 선시집이다. 근체시는 당대에 와서 확립

  • 영배 / 嶺背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와 함경북도, 그리고 강원도의 영동 지방을 아울러 부르는 말. 낭림산맥과 태백산맥의 뒤에 있는 지방이라는 뜻으로 영배의 영은 철령(鐵嶺)을 가리킨다. 등마루 산맥(山脈)의 뒤라는 뜻으로 강원도(江原道)와 함경도(咸鏡道)를 아울러 일컫기도 한다. 이 영의 북부 지

  • 영빈서원 / 瀯濱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에 있는 서원. 1744년(영조 20)에 영천사(瀯川祠)라는 사우로 창건하여 정구(鄭矩, 1350∼1418), 정종(鄭種, 1417∼1476), 정표(鄭彪, 1515∼1578), 정응두(鄭應斗), 정시수(鄭時修, 1601∼1647), 정영진

  • 영빈이씨묘비 / 暎嬪李氏墓碑 [역사/조선시대사]

    영조의 후궁 영빈이씨(暎嬪李氏)의 묘비의 전면을 종이에 떠낸 뒤 족자 형태로 장황하여 만든 탑본. 비석의 전면과 음기는 1764년(영조 40) 9월에 영조가 직접 짓고 썼다. 음기에는 먼저 영빈의 가계와 주요 이력 및 자손의 이름, 영빈의 품성과 주요 업적이 차례대

  • 영빈이씨증시교문 / 暎嬪李氏贈諡敎文 [정치·법제]

    1765년(영조 41) 7월 11일.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에게 의열(義烈)이라는 시호를 내린 교문. 《영조실록》106권에 실려 있다. 이씨는 1730년(영조 6) 영빈으로 봉해졌으며, 영조의 깊은 총애를 받았다. 영조가 교문을 직접 지어서 본궁에 거둥하여 시호를

  • 영빈이씨증시교지 / 暎賓李氏贈諡敎旨 [정치·법제]

    1765년(영조 41) 7월 11일.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에게 의열빈(義烈嬪)이라는 시호를 내린 교지. 이 교지는 붉은 종이에 씌어 있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영조실록》196권에 실려 있다. 영조가 이 교지와 제문을 직접 지어서 본궁에 거동하여 시호를 내리는 예를

  • 영빈행장 / 暎嬪行狀 [역사/조선시대사]

    정조가 직접 지은 할머니 영빈이씨(暎嬪李氏)의 행장. 이 글을 ≪홍재전서≫에서는 찾을 수 없는데, 영조를 "금상"이라고 칭하는 것으로 보아 세손 시절에 지은 듯하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영빈이 영조의 빈으로서 지켰던 부덕(婦德)을 매우 세세히 보여준다. 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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