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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김거웅 / 金巨雄 [예술·체육/서예]
고려전기 거돈사지의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문」을 쓴 서예가. 1025년(현종 16)에 건립되었고 현재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거돈사지에 있는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居頓寺圓空國師勝妙塔碑)」(보물 제78호)를 썼다. 그밖에 그의 가계나 행적을 전하는 기록이 없는 실정이다.
김건 / 金健 [예술·체육/연극]
1912-미상. 극작가. 본명 창기(昌基). 서울 출생. 개성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도일, 동경(東京)에서 연극수업을 했다. 귀국 후인 1930년대 중반부터 주로 상업극단을 상대로 희곡을 쓰기 시작하여, 〈섬색시〉(1935.7.)를 시발로 〈거리의 등불〉·〈쌍동이 행진곡
김건수 / 金健壽 [종교·철학/유학]
1804년(순조 4)∼1866년(고종 3). 조선 후기 성리학자. 학봉 김성일의 후손, 부친은 김백찬이다. 부인은 전주유씨이다. 정재 유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37년(헌종 3) 식년시 진사 3등 67위로 합격하였다. 1847년(헌종 13)에 스승 유치명과 함
김경남 / 金景南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거문고 삼절(三絶)의 한 사람. 한말 거문고의 대가인 김경남·함재운(咸在韻)·이병문(李炳文)을 거문고 삼절이라 하였는데, 그 가운데 김경남은 가곡반주, 함재운은 〈여민락 與民樂〉, 이병문은 〈영산회상 靈山會相〉에 뛰어났다. 그의 유보(遺譜)인 《금보 琴譜
김경서 / 金景瑞 [종교·철학/유학]
1564(명종 19)∼1624(인조 2). 조선 중기의 무신. 일찍이 무과에 급제, 1588년(선조 21) 감찰이 되었으나 집안이 미천한 탓으로 파직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기용되었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정주목사,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김경선 / 金慶先 [역사/근대사]
1862-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 서부(西部; 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貞洞)이다. 1907년(융희 1)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경기도 포천(抱川)에 위치한
김경수 / 金景壽 [종교·철학/유학]
1543(중종 38)∼1621(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의병.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응정, 어머니는 조숙견의 딸이다. 유년 시절에 큰아버지인 응두에게『효경』·『소학』 등을 배운 뒤 족형인 김인후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기효간·정운용·변이중 등과 학문을 강론하였다. 군
김경식 / 金景軾 [역사/근대사]
1870-1940.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인·항일운동가. 한학(漢學)을 공부하다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증산교가 흩어진 이후 그 신도였던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이 세운 증산교 계열의 보천교(普天敎)에 입교(入敎)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는 역시
김경유 / 金景游 [종교·철학/유학]
1698년(숙종 24)∼1773년(영조 49).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1762년(영조 38) 어영군기수보로 첫 출사한 이래 첨지중추부사 겸 순장, 1765년 용호영군기수보·동지중추부사·오위장 등을 역임하였다. 1772년 조관으로서 70세에 이르러 특별히 가선대부의
김경천 / 金景天 [역사/근대사]
1888-193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소안면(所安面)이다. 1913년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리에 김사횡(金仕宖)이 설립한 중화학원(中和學院)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항일의식을 배양시켰다. 19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