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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장익부 / 張益富 [역사/근대사]
1891-1938.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철산 출신. 1920년 5월경 정원범(鄭元範)·정치민(鄭致敏) 등 동지와 같이 독립운동을 목표로 향리에서 대한청년숭의단(大韓靑年崇義團)을 조직하고 부단장이 되었다. 의용군을 모집, 만주독립군 본부에 파견함과 동시에 군자금을 모집
장인환 / 張仁煥 [역사/근대사]
1876-1930.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통감부 외무고문 스티븐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의 한국침략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보고 그를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1908년 3월 23일 아침 페리역에서 스티븐즈를 권총으로 저격·사살하였다.
장일환 / 張日煥 [역사/근대사]
1886-1918. 독립운동가. 평양 출생. 1913년 여름 안창호(安昌浩) 등의 후원으로 평양에 청산학교(靑山學校)를 설립하였다. 1914년 평양에서 숭실학교(崇實學校)와 신학교(神學校)의 재학생과 졸업생을 중심으로 조선독립청년단(朝鮮獨立靑年團)을 조직하고, 기관지
장재모 / 張載模 [역사/근대사]
1883-1945. 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경선(景善). 호는 성수(聖樹). 전라남도 승주 출신. 연(演)의 후손으로, 일환(日煥)의 아들이다. 충절이 대단하고 무예가 뛰어나며, 특히 포술(砲術)에 능하였다. 1908년 2월 전라남도 보성 동소산(
장조민 / 張朝民 [역사/근대사]
1907-1967. 광복군. 평안북도 선천 출신. 1922년 16세 소년으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입대하여 독립투쟁을 시작하였다. 1924년 5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기습하여 일본인들에게 큰 위협을 주었으며, 1928년 6월까지 중국·만주 각지에서 무장투쟁을 전개
장진수 / 張振秀 [역사/근대사]
1894-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창녕군(昌寧郡) 영산면(靈山面)이다. 1919년 3월 13일 구중회(具中會)·김추은(金秋銀) 등 천도교인 23명과 함께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신석구(申錫九)를 통해 독립
장진원 / 張鎭元 [역사/근대사]
1900-1928. 독립운동가. 일명 심원(沈元). 평안북도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하였고, 1920년 군자금 모금원과 같이 간도로 들어가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 활동하였다. 1921년 5월 최재경(崔在京)·박일권(朴日權)
장진홍 / 張鎭弘 [역사/근대사]
1895-1930. 독립운동가. 일명 성욱(聖旭). 경상북도 칠곡 출신. 1912년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에 입대, 상등병으로 근무하다가 1914년 제대한 뒤 비밀항일결사인 광복단(光復團)에 입단하였다. 1918년 이국필(李國弼)과 같이 하바로스크로 가서 그곳 교포청년
장한성 / 張寒星 [역사/근대사]
1891-193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국민대표대회에 고려혁명군사령부 대표로 참석하였다. 국민부와 조선혁명당을 조직하자 특립대장이 되어 동만지구총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공산당원이라는 혐의로 중국 공안국에 체포, 옥사하였다.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장해평 / 莊海平 [역사/근대사]
1905-1965. 독립운동가. 일명 기준(麒俊). 가명은 남용무(南容武)·이계백(李啓白). 황해도 안악 출신. 운동(雲洞)의 아들이다. 1922년에 정주 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를 3년 수료한 뒤 이듬해 조선일보 안악지국을 경영하다가 동향인 김구(金九)·오면직(吳冕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