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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파견 특명전권공사 閔泳煥 해임장 [정치·법제]
고종이 특명전권공사로 영국 수도에 가 있던 민영환의 해임을 영국 군주 및 오인도 후제에게 알리기 위해 작성한 해임장. 고종의 친필 서명과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라고 새긴 국새가 찍혀 있다. 1897년(건양 2) 9월 21일에 작성하였다.
영남암행어사여준영봉서 / 嶺南暗行御史呂駿永封書 [정치·법제]
1798년(정조 22). 정조가 여준영을 암행어사로 봉하며 영남지방의 공진을 감찰하라는 문서. 《홍재전서》에 이 내용이 실려 있어 이 문서가 발급된 시기를 알 수 있다. 내용은 영남지방의 공진이 오히려 폐단을 낳자, 암행어사를 보내어 대구, 밀양, 하양, 용궁, 청하,
영남위유어사봉서 / 嶺南慰諭御使封書 [정치·법제]
1794년(정조 18). 정조가 이익운을 영남 위유어사로 보내면서 내려준 봉서. 이 봉서에는 이익운으로 하여금 위유하는 윤음을 반포하게 함과 동시에 암행어사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질고와 수령들의 근만 등을 염찰하는 등 14개 조목으로 수행해야할 임무를 열거하고 있다.
영빈이씨증시교문 / 暎嬪李氏贈諡敎文 [정치·법제]
1765년(영조 41) 7월 11일.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에게 의열(義烈)이라는 시호를 내린 교문. 《영조실록》106권에 실려 있다. 이씨는 1730년(영조 6) 영빈으로 봉해졌으며, 영조의 깊은 총애를 받았다. 영조가 교문을 직접 지어서 본궁에 거둥하여 시호를
영빈이씨증시교지 / 暎賓李氏贈諡敎旨 [정치·법제]
1765년(영조 41) 7월 11일.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에게 의열빈(義烈嬪)이라는 시호를 내린 교지. 이 교지는 붉은 종이에 씌어 있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영조실록》196권에 실려 있다. 영조가 이 교지와 제문을 직접 지어서 본궁에 거동하여 시호를 내리는 예를
영빈행장 / 暎嬪行狀 [역사/조선시대사]
정조가 직접 지은 할머니 영빈이씨(暎嬪李氏)의 행장. 이 글을 ≪홍재전서≫에서는 찾을 수 없는데, 영조를 "금상"이라고 칭하는 것으로 보아 세손 시절에 지은 듯하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영빈이 영조의 빈으로서 지켰던 부덕(婦德)을 매우 세세히 보여준다. 그 중에서
영양현호적대장 / 英陽縣戶籍大帳 [사회/촌락]
1792년(정조 16)에 조사, 작성된 경상도 영양현의 호적대장. 1책. 필사본. 크기는 세로 55㎝, 가로 38㎝, 분량은 250매. 완본(完本)이나 마지막 부분(北面의 호적 대부분)이 많이 낙장되어 있다. 장서각 도서에 있는데, 표지에는 무주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
영왕자내수책홀기 / 英王自內受冊笏記 [정치·법제]
영친왕 홀기. 영왕(英王) 곧 영친왕이 1900년(고종 40) 8월 17일 중화전(中和殿)에서 책문을 받는 의식 절차를 기록한 홀기이다.
영정신연도남산연유치주문 / 影幀神輦到南山緣由馳奏文 [정치·법제]
1900년(광무 4) 3월 13일에 안변에서 남산의 숙소에까지 영정을 무사히 모셔왔음을 의정부 의정과 장례원 경이 고종에게 아뢴 주문. 영정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미상, 옮긴 목적은 그것을 모사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의정부 의정이 영정모사도감 도제조의 직무를
영정신연도회양군연유치주문 / 影幀神輦到淮陽郡緣由馳奏文 [정치·법제]
1900년(광무 4) 3월 15일 고산참에서 진발한 영정이 회양군의 숙소에 도착하였음을 의정부의정과 장례원경이 고종에게 아뢴 주문. 영정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미상이며, 옮긴 목적은 그것을 모사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의정부 의정이 영정모사도감도제조의 직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