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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일제강점기
길림대검거사건 / 吉林大檢擧事件 [역사/근대사]
1927년 만주 길림에서 독립운동가 300여 명이 중국 군경에게 붙잡힌 사건.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는 1925년 중국과 일본간에 한국독립운동자 체포와 인도에 관하여 합의한 미쓰야협정에 그 원인이 있었다. 길림대검거사건으로 일본당국이 독립운동자 50여 명을 일본경찰로
길선주 / 吉善宙 [종교·철학/개신교]
항일기의 기독교인(1869-1935). 1897년 기독교 교인이 되었고, 안창호 등과 함께 독립협회 평양지부를 조직했다. 전도활동과 교육사업에 매진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다. 평안남도 고창교회에서 설교 도중에 죽었다.
길진섭 / 吉鎭燮 [예술·체육/회화]
1907-미상. 양화가. 평양 출생.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길선주(吉善宙) 목사의 아들이다. 1932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민족사회의 서화협회전람회에 참가하였고, 1934년 이종우(李鍾禹)·장발(張勃)
김갑 / 金甲 [역사/근대사]
1888-미상. 독립운동가. 국내에서는 진원(晋源)이라고 불렀고, 중국망명 후 갑(甲)이라 하였다. 부산 출신. 부산 동명학교(東明學校: 동래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부기학교를 다니다가 3·1운동을 맞아 함양·산청 등지의 항일투쟁 연락책임을 띠고 활동하
김갑수 / 金甲洙 [역사/근대사]
1894-1938.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운동가.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한산면(韓山面) 출신이다. 부농(富農)이었던 김영성(金永聲)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한 이후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에서 위원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귀국하여 1927년 전라북도 완주군(完州
김갑진 / 金甲辰 [역사/근대사]
미상-193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함경북도 성진(城津)이다. 신간회(新幹會)와 성진청년동맹(城津靑年同盟)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신간회와 성진청년동맹이 해체된 후, 두 조직을 기반으로 한 성진농민조합(城津農民組合)을 결성한 후,
김강사와 티교수 / 金講師─敎授 [문학/현대문학]
유진오(兪鎭午)가 지은 단편소설. 1935년 『신동아(新東亞)』 1월호에 발표되었다. 일제강점기의 나약한 지식인상을 다룬 드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자가 경성제국대학 예과 강사시절의 체험을 근거로 하여, 지식인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당시 지
김건 / 金健 [예술·체육/연극]
1912-미상. 극작가. 본명 창기(昌基). 서울 출생. 개성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도일, 동경(東京)에서 연극수업을 했다. 귀국 후인 1930년대 중반부터 주로 상업극단을 상대로 희곡을 쓰기 시작하여, 〈섬색시〉(1935.7.)를 시발로 〈거리의 등불〉·〈쌍동이 행진곡
김경남 / 金景南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거문고 삼절(三絶)의 한 사람. 한말 거문고의 대가인 김경남·함재운(咸在韻)·이병문(李炳文)을 거문고 삼절이라 하였는데, 그 가운데 김경남은 가곡반주, 함재운은 〈여민락 與民樂〉, 이병문은 〈영산회상 靈山會相〉에 뛰어났다. 그의 유보(遺譜)인 《금보 琴譜
김경선 / 金慶先 [역사/근대사]
1862-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 서부(西部; 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貞洞)이다. 1907년(융희 1)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경기도 포천(抱川)에 위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