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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김영숙 / 金永肅 [역사/근대사]

    1886-1952.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 호는 백주(白舟). 충청남도 결성군(지금의 홍성군) 출신. 1911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뒤, 잠시 서울 승동소학교(勝洞小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같은해 8월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대종교의 윤세복(尹世

  • 김영순 / 金英順 [교육/교육]

    189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교육자. 본적은 서울이다. 정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오현주(吳玄洲)의 권유로 비밀결사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는 1919년 3월과 4월 사이에

  • 김영식 / 金永植 [역사/근대사]

    1899-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장성(長城)이다. 1919년 5월 김순호(金順皓)로부터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을 중심으로 임시 정부 지원 등을 위해 결성된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설립취지를 듣고서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였다.

  • 김영작 / 金永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2∼1868). 김홍집의 아버지로 주요 내외직에 임명되었다. 외직에 있을 때 선정으로 칭송을 받았는데, 정주·청주목사로 재임 시 대동미, 조운제도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경사에도 밝았으며 시문에 더욱 능하였다. 저술로는《소정고》 6권과 《청묘의례

  • 김영재 / 金英哉 [역사/근대사]

    1911-1965. 독립운동가. 별명은 왕영재(王英哉).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31년 상해로 망명, 1932년 상해에서 한인청년당(韓人靑年黨)을 조직하여 항일특무공작활동을 하였다. 같은해 4월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투탄의거(虹口公園投彈義擧)때, 윤봉길이 사용

  • 김영조 / 金榮祖 [종교·철학/유학]

    1577(선조 10)∼1648(인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사의 농, 아버지는 산음현감 대현,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김성일의 사위이다. 9형제 중 5명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를 거쳐 대사성,

  • 김영태 / 金榮泰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초개수첩』·『결혼식과 장례식』 등을 저술한 시인.화가·연극평론가·무용평론가. 서울 필운동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1959년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둔다」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 김영한 / 金榮漢 [정치·법제/정치]

    1857년(철종 8) 6월 14일∼1927년 8월 19일. 일제 강점기 관료. 조선 말기 의금부도사와 탁지부주사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대한제국기에 법부참서관·중추원의관·탁지부 인쇄국장 등을 지냈다. 1921년부터 1927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중추원참의를 지냈다. 1924

  • 김영행 / 金令行 [종교·철학/유학]

    1673년(현종 14)∼1755년(영조 31).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관찰사 김시걸. 김창흡의 문인이다. 1725년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나 우사어로 다시 기용되고, 이어서 임천군수를 거쳐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을 모은《필운유고》가 전한다.

  • 김예직 / 金禮直 [종교·철학/유학]

    1565∼1623.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첨정 희철, 광해군의 어머니인 공빈김씨의 동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평범한 선비로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다음 해 무과에 급제, 1604년평안도 용천군수를 거쳐 1610년(광해군 2) 첨지중추부사

  • 김옥균 / 金玉均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정치가·개화운동가(1851∼1894). 갑신정변을 주도하였다. 갑신정변에 투영된 김옥균의 사상 속에는 문벌의 폐지, 인민평등 등 근대사상을 기초로 하여 낡은 왕정사 그 자체에 어떤 궁극적 해답을 주려는 혁명적 의도가 들어 있었다. 저서로는《기화근사》·《

  • 김옥주 / 金玉珠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시 동래동에서 살았다. 소학교 졸업후 김자진(金子眞)으로부터 검무를 배워 23년간 무용계에 종사하였으며, 1967년 1월「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이우선

  • 김용겸 / 金用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702∼1789). 김시보에게서 수학하였다. 1748년에 선공감감역에 제수된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우승지·공조판서가 되었다. 정조와 경서·사기·백가로부터 국조헌장에 이르기까지 두루 토론하였다.

  • 김용규 / 金龍圭 [종교·철학/유학]

    1892년(고종 29)∼1964년. 조선 말기의 유학자. 보백당 김계행의 후손, 증조부는 김기순, 조부는 김찬근, 부는 김병희이다. 5세에 권상익 문하에서 수학, 이제상의 문하에서 성리를 탐구하였다. 유교경전에 박학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로 두문불출하고 경서

  • 김용식 / 金容植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런던올림픽대회 국가대표팀 코치 겸 선수로 활약한 체육인. 황해도 신천 출신. 주역의 셋째아들이다. 10살 때 축구를 시작했고, 경신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학생 시절에는 한때 빙상선수로 활약하였고, 1928년 11월 경신학교 재학 시절에 개최된 제9회

  • 김우규 / 金友奎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객(歌客). 『청구가요(靑邱歌謠)』의 김우규 작품 후서에서 김수장(金壽長)은 김우규가 자기보다 한 해 뒤인 신미년(1691)에 태어났으며(聖伯年令辛未我庚午), 당시에 그가 생존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此輩已沒 只有聖伯與我矣). 김수장이 이 글을 쓴 해가

  • 김우창 / 金禹昌 [종교·철학/유학]

    1830년(순조 30)∼1906년(광무 10). 조선 말기의 학자. 아버지는 김진필,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권방도의 딸이다. 외삼촌 권재정을 사사하였다. 1883년(고종 20) 도내 유생들이 정경세의 문묘배향을 주장하여 소를 올릴 때 소두가 되었다. 1895년 민비가

  • 김우태 / 金宇泰 [종교·철학/유학]

    1647년(인조 25)∼1708년(숙종 34). 조선 후기 유생. 증조는 김경신, 조부는 김계미. 부친 장사랑 김상현과 모친 선무랑 홍호약의 딸 부림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김이절의 딸 일선김씨이다. 자라서 목재 홍여하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처음 학문하는 방

  • 김우항 / 金宇杭 [종교·철학/유학]

    1649(인조 27)∼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진선 증손, 할아버지는 덕승, 아버지는 청송부사 홍경, 어머니는 김광혁의 딸이다. 1681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정언, 수찬, 교리, 경상도관찰사, 이조참판, 대사성,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 김원 / 金遠 [예술·체육/서예]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문」을 쓴 서예가.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에 있는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보물 제158호)를 썼다. 884년(헌강왕 10)에 건립된 이 비의 비문은 김영(金穎)이 짓고 무주곤미현령(武州昆湄縣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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