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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장두희 / 張斗熙 [역사/근대사]
1883-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풍산면(豊山面)이다.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독립만세운동에 고무되어 김정익(金正翼)·손영학(孫永學)·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거의(擧義)할 것을 다짐하였다. 1919년 3월 2
장봉한 / 張鳳漢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종성 출생.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在亨)의 부하로 활약하였고, 노령의 추풍(秋風) 달자동(達子洞)에서 800여 명으로 결사대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9월 홍범도(洪範圖)와 함께 부하 약 50
장석영 / 張錫英 [역사/근대사]
1851-1929. 독립운동가·유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일명 석교(碩敎). 호는 회당(晦堂). 경상북도 칠곡 출신. 1905년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통분하여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청
장석천 / 張錫天 [역사/근대사]
1903-1935. 광주학생운동 주동자. 전라남도 완도 출신. 수원고등농림학교를 2년간 수료한 뒤 1926년 동경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4개월 만에 퇴학당하였다. 1927년 3월부터 전라청년연맹 상임위원, 전남청년연맹 위원장 등을 지냈고, 강해석(姜海錫)·박인수
장석함 / 張錫咸 [역사/근대사]
1889년(고종 26) 3월 15일∼1951년 4월 5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함경남도 함흥(咸興)이다. 1908년(융희 2) 국권회복을 위한 단지동맹회(斷指同盟會), 신민회(新民會) 등에서 활동 하였다. 중국 용정(龍井) 신촌(新村)에 영신학교(永新學
장선희 / 張善禧 [역사/근대사]
1894-1970.항일기의 독립운동가. 3·1 운동이 일어나자,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여, 투옥된 애국지사들의 가족을 돕고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제2대 재무부장이 되어 전국적으로 조직을 강화하고 미국에까지 지부를 설치하여 대대적인 독립운동을 하
장세용 / 張世湧 [역사/근대사]
1902-1936.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울진 출신. 1922년 재만 각 독립운동단체가 통합하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결성하자 이에 가입, 통의부소속 독립군인 의용대(義勇隊)소대장으로 직접 항일전투에 참전하였고, 1926년 만주 유하현 삼원보(柳河縣三源堡)에서 동명
장소진 / 張韶鎭 [역사/근대사]
1886-1924. 독립운동가. 일명 봉래(鳳來).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4월 3일 주곡리 광장에 갔다가, 차희식(車喜植)으로부터 만세시위운동 계획을 전해듣고 적극 참여하기로 하였다. 이날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던 차희식 등은 이미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도 모두
장승열 / 張承說 [역사/근대사]
1890-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북도 의주(義州)이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후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 남구(南區) 장전(長甸)에 거주하면서 작은 선박을 운행하면서 독립군들이 강을 건널 때와 물품을 운반해야 할 때 많은
장의찬 / 張宜燦 [역사/근대사]
1923-1954. 독립운동가. 서울 출신. 1941년 항일학생단체인 흑백당(黑白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39년 경복중학(景福中學)재학중, 동급생인 이현상(李賢相)·홍건표(洪建杓)·주낙원(朱樂元)·명의택(明義宅) 등과 함께 독립을 위하여 친일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