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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필 / 權韠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시인. 승지 권기(權祺)의 손자이며, 권벽(權擘)의 다섯째아들이다. 정철(鄭澈)의 문인으로,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은 채 야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술로 낙을 삼아, 부인이 금주를 권하니 시 「관금독작(觀禁獨酌)」을 지었다. 젊었을
권학가 / 勸學歌 [문학/고전시가]
학문을 권장하는 뜻을 담은 가사. 지금까지 알려진 <권학가>는 모두 7종이 있는데, 가첩 ≪초당곡전 草堂曲全≫에 필사본으로 전하는 작자·연대 미상의 것, ≪청구문수 靑丘文粹≫에 수록된 최명길(崔鳴吉)이 지은 것이 있다. 또 가첩 ≪효우가≫에 필사본으로 전하는 작가 및
권학사목 / 勸學事目 [교육/교육]
1407년(태종 7) 권근(權近)이 작성한 8조목의 교육 규정. ≪양촌집 陽村集≫의 논문과서(論文科書)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초 유학의 진흥과 학제 및 과거제의 정착을 도모한 학술진흥책이다. 권학사목은 조선 초기의 교육정책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예로 명경(明
권해 / 權瑎 [종교·철학/유학]
1639(인조 17)∼1704(숙종 30).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권위, 아버지는 호조판서 권대재, 어머니는 정랑 이진의 딸이다. 1665년(현종 6)에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부정자로 처음 벼슬길에 오른 뒤, 대사성, 강화유수, 형조참
권행 / 權幸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고려 전기의 공신. 930년(태조 13) 후백제의 견훤이 고창군을 포위하여 전세가 고려에게 매우 불리하였다. 이 때 유금필의 주장으로 공격을 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는 당시 고창지방 호족으로 추측되는 이들이 협조를 잘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전공으
권헌 / 權憲 [종교·철학/유학]
?∼1504(연산군 10).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길창부원군 권람, 아버지는 경주부윤 권걸, 어머니는 남척의 딸이다. 1493년 사섬시직장이 되고 이어서 장악원직장으로 재임중 150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병으로 정언직을 사임한 왕비 신씨의 먼 친척
권현 / 權灦 [종교·철학/유학]
1634년(인조 12)∼1695년(숙종 21).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부는 권덕윤, 조부는 권양, 아버지는 권처선이다. 경당 장흥효의 문인인 번곡 권창업과 진사 이재욱 등에게 수학하였다. 향시에는 세 차례 합격했으나 끝내 회시에는 합격하지 못하였다. 한 평생 불우하게
권현상 / 權顯相 [종교·철학/유학]
1782년(정조 6)∼1840년(헌종 6).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 통덕랑 권진한과 모친 남양홍씨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권호상이 있다. 정종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3세 때 문자를 깨우쳤고, 8세 때 기러기가 그려진 병풍
권형진증시문서 / 權瀅鎭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증규장각제학 권형진(權瀅鎭)에게 '민희(敏僖)'란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응사유공왈민 소심공신왈희'라 적어 민희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 7월 18일 순종은 83명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이때 경무사 권형진은
권호문 / 權好文 [종교·철학/유학]
1532(중종 27)∼1587(선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학자. 안주교수 권규 아들이다. 1549년(명종 4) 아버지를 여의고 1561년 30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1564년에 어머니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 아래에 무민재를 짓고 그곳에 은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