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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권원수실적 / 權元帥實蹟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문신·명장 권율의 행적을 모아 엮은 전기. 1책. 필사본. 편자 미상이고, 편집 연대는 19세기 후반으로 보인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도원수로서 크게 활약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 책에 나오는 묘지명·제문·사행(事行) 등을 모아놓았다.특히 왜
권유 / 權愉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1704(숙종 30). 조선 후기의 문신. 목사 권훈의 손자이며, 승지 권형의 현손이다. 1665년 (현종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대사간·예문관대제학 등 요직을 맡았다.
권유선 / 權有善 [종교·철학/유학]
?(중종)-?(선조). 아버지는 권평, 어머니는 김사검의 딸이다. 저자의 생평 자료는 8세손 권문혁까지는일부 남아 있었으나 미산정사와 고적이 1798년(정조 22) 화재로 모두 소실되어 증빙할 문헌이 거의 없다. 9세손 권석원의 가장과 용전 김철희의 묘갈명을 바탕으
권응수 / 權應銖 [종교·철학/유학]
1546(명종 1)∼1608(선조 41). 조선 중기의 의병장·무신. 아버지는 권덕신이다. 1583년 별시무과에 급제, 수의부위권지를 거쳐 훈련원부봉사로서 의주용만을 지켰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 돌아가 의병을 모집하여 궐기했다. 경상좌도병마절도사우후, 밀양부
권응인 / 權應仁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의 문인. 퇴계(退溪)이황(李滉)의 제자로 시문에 능하였다. 권응인은 서류 출신인 탓에 서얼금고(서얼 출신은 벼슬에 재한을 두는 것)에 얽혀 벼슬은 겨우 한리학관(漢吏學官)에 머물고 말았다. 당대의 명문장가이다. 권응인은 송대의 시풍이 유행하던 당시의 문단에
권이복 / 權以復 [종교·철학/유학]
1740년(영조 16)∼1819년(순조 19). 조선 후기 학자. 부친 성균관생원 권염과 모친 박이상의 딸 무안박씨 사이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 권이관·권이림이 있다. 대산 이상정의 문하에서 수학, 세상 명예와 이득에 뜻을 두지 않았다. 평생 학문의 기본을
권이진 / 權以鎭 [종교·철학/유학]
1668(현종 9)∼1734(영조 10). 조선 후기의 문신. 예조좌랑 권득기 증손, 할아버지는 우윤 권시, 아버지는 현감 권유, 어머니는 산림 송시열의 딸이다. 윤증의 문인이다. 1694년(숙종 2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한평현령, 전라도도사, 평안도관찰사 등을
권익중전 / 權益重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 활자본. 이 작품은 전반부에서는 권익중과 이춘화의 애정관계를 엮어 놓았고, 후반부에서는 그들의 아들 권선동의 결연과정과 무용담을 표현해 놓은 특이한 소설이다. 영웅의 전기적 유형에 속하는 작품으로, 초기 전기소설(傳奇小說)의 성격을 탈
권인하 / 權人夏 [종교·철학/유학]
1805(순조 5) ∼1889(고종 26). 아버지 권택모, 어머니는 의성김씨이다. 어릴 때부터 영민하였으며 <소학>‧<효경> 등의 서적을 공부하였다. 33살 때인 1837년(헌종 3)에 정재 유치명 선생을 찾아가 <대학>‧<서명> 등을 공부하였다. 선배 학자들의 사
권일신 / 權日身 [종교·철학/천주교]
조선 후기의 학자·천주교인(1751∼1791). 1782년(정조 6)에 천주교에 입교했고, 이승훈에게 영세를 받았다. 이후 포교활동에 힘썼다. 신해박해 때 체포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회오문을 바쳐서 배교했다. 예산으로 이송 도중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