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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원일록 / 講書院日錄 [종교·철학/유학]
1759년 8월 9일부터 1761년 7월 5일까지 강서원에서 박성원이 정조의 세손시절 교육과정을 기록한 일지.관청일기. 『강서원일록(講書院日錄)』은 강서원에서 진강을 주관하였던 좌익선(左翊善) 박성원(朴聖源)이 정조의 세손시절 교육과정을 기록한 관청일기로, 현재 한국학
강서향교 / 江西鄕校 [교육/교육]
평안남도 강서군(현재의 남도직할시 강서구역) 강서면 덕흥리 옥녀봉(玉女峰) 동쪽에 있는 향교. 516년(중종 11)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그 뒤 향교가 퇴락하자, 1699년에 현령 조정신(趙正伸)을 비
강서희 / 姜瑞禧 [역사/근대사]
1880-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1910년(융희 4) 일제에게 조선의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에 신흥의숙(新興義塾)을 설립하고 교민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며 항
강석규 / 姜錫圭 [종교·철학/유학]
1628년(인조 6)~1695년(숙종 21). 조선 중기 문신. 고조는 강극성, 증조는 강종경, 조부는 강진휘이다. 부친 강덕후의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송문길, 처부는 이군미, 숙부는 청백리 강유후이다. 동생으로 강석복‧강석명‧강석구가 있다. 1660년
강석기 / 姜碩期 [종교·철학/유학]
1580(선조 13)∼1643(인조 21). 조선 후기의 문신. 강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령 강유경, 아버지는 이조참의 강찬,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김은휘의 딸이다. 김장생의 제자로 1616년(광해군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대사간, 대사성, 도승지, 이조판
강석대 / 姜石大 [역사/근대사]
1858-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강원도 화천군(華川郡)이다. 천도교(天道敎) 신자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천도교 중앙본부로부터 지령을 받고 독립선언문과 지령문을 수령하여 비밀리에 화천군으로 가져왔다. 김창의(金昌義) 등과
강석빈 / 姜碩賓 [종교·철학/유학]
1631(인조 9)∼1691(숙종 17). 조선 후기의 문신. 우의정 강사상 현손, 할아버지는 강홍중, 아버지는 목사 강욱, 어머니는 이창원의 딸이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충청도암행어사, 이조좌랑, 경기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강석진 / 姜碩振 [역사/근대사]
1881-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이다. 기독교에 귀의하여 장로를 역임하였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밀리에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여 사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919년 4월 1
강석훈 / 姜錫勳 [역사/근대사]
1896-198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종성군(鐘城郡)이다. 1917년 3월부터 1918년 12월까지 약 2년간 길림성(吉林省) 혼춘현(琿春縣) 대황구(大荒溝)에 있던 북일중학교(北一中學校)에 재학하였다. 1920년 5월 16일 대한민국 임시 정
강선루 / 降仙樓 [예술·체육/건축]
북한 평안남도 성천군 성천면에 있는 조선시대 성천객사의 누정.누각·조경건축물. 동명관(東明館)의 부속건물로,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건물이다. 동명관은 조선시대 성천부의 객관으로, 중국사신을 맞기 위하여 1343년(충혜왕 4)에 건립되었으며, 1768년(영조 44
강선백양나무 / 降仙白楊─ [과학/식물]
북한의 행정구역상 남포직할시 천리마구역 상봉동에 있는 백양나무. 북한 천연기념물 제57호. 강선 백양나무는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구내에서 자라고 있다. 백양나무가 자라고 있는 토양은 밤색토양이고 질메흙이며 토심은 깊다. 그리고 거름기가 많고 습기는 적당한 편이다. 나무는
강선칠 / 姜善七 [역사/근대사]
1892-1935.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 봉강리(鳳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서울에서 전달되면서, 강선칠(姜善七)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천도교와 기독교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강성리 / 康聖利 [역사/근대사]
1894-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신천(信川)이고,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시(平壤市)이다. 1920년 3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파견된 이근수(李根洙)를 만난 후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다짐하였다. 그 후 이근수를 도와 친일인사들을 암살하
강성삼 / 姜聖參 [종교·철학/천주교]
1866년(고종 3)∼1903년. 천주교신부. 주교 리델과 신부 로베르 등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1877년 한국 입국에 성공하자 곧 신학생교육에 착수, 신학생을 선발하여 교육하였다.1890년에 귀국하여 서울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1896년 4월 26일
강성서원 / 江城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늑룡리에 있는 서원. 1643년(인조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문익점(文益漸)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월천사(月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뒤, 1692년(숙종 18)에는 문위세(文緯世)를 추가배향하였다. 1785년(정조 9)에 강성(江城)
강세구 / 姜世龜 [종교·철학/유학]
1632(인조 10)∼1703(숙종 29). 조선 후기의 문신. 대사헌 강첨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학년, 아버지는 강원도관찰사 강호, 어머니는 윤지경의 딸이다. 1676년(숙종 2) 강릉참봉에 기용, 1678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정자, 정언, 수찬, 호조
강세규 / 姜世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62∼1833). 승문원을 거쳐 공조정랑·예조좌랑·감찰·경상도도사·지평·정언·기주관 등을 역임하였다. 책문에서 군포·조곡·전부 등의 조세 방안이 공정하고 현실적이길 논하였다. 저서로는《긍암집》이 전한다.
강세륜 / 姜世綸 [종교·철학/유학]
1761년(영조 37)∼1842년(헌종 8). 조선 후기 문신·유학자. 증조는 강석번, 조부는 강박, 부친은 강필악이다. 외조부는 이재후이다. 1783년(정조 7) 증광시 병과 17위로 문과에 급제한 후, 장령·시독관·승지·종성부사·사간원대사간·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
강세황 / 姜世晃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인서화가·평론가(1713∼1791).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춘 사대부 시·서·화 삼절로서 한국적 남종문인화풍 정착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진경산수의 발전과 풍속화·인물화의 유행, 새로운 서양화법의 수용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저서로는《표암집》이 있다.
강세황 행초 표암유채 / 姜世晃 行草 豹菴遺彩 [예술·체육/서예]
조선 후기의 대표적 문인서화가이자 평론가인 표암(豹菴)강세황(姜世晃)이 역대 명인의 시구(詩句) 가운데 일부 구절을 뽑아 쓴 행초(行草) 서첩. 보물 제1680호. 선장(線裝)으로 장정되어 있는 표지에는 후대에 쓴 것으로 보이는 ‘표암유채(豹菴遺彩)’라는 글씨가 행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