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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김양행 / 金亮行 [종교·철학/유학]

    1715(숙종 41)∼1779(정조 3). 조선 후기의 문신ㆍ학자.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김신겸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좌의정 이이명의 딸이다. 민우수의 문인, 이간의 인물동성론에 동조한 김창흡의 영향을 받아 낙론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오직 학문연구에 전념하

  • 김억 / 金億 [문학/현대문학]

    항일기의 시인·평론가(1896-?). 호는 안서·안서생(岸曙生)·A. S..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정에 그가 남긴 공적은 매우 컸다. 특히, 1921년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역시집 《오뇌의 무도》가 폐허 및 백조동인들의 초기시에 미친 영향은 더욱 주목된다. 그리고

  • 김억득 / 金億得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일제강점기의 국악가.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쌍교동(雙橋洞)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김사문(金士文)이다. 성품이 호협하고 생각이 진취적이며, 창의력이 뛰어나 문예활동이 왕성했다. 전국의 명창, 명기들을 모아 서울에서 협률사(協律社)를 조직하였고, 《

  • 김언건 / 金彦健 [종교·철학/유학]

    1511(중종 6)∼1571(선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공저, 아버지는 장사랑 자, 어머니는 흥양이씨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어 어려운 과정에서 학문을 닦았고, 장년이 되자 노수신·임훈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운정유집』이 전한다.

  • 김여진 / 金麗鎭 [역사/근대사]

    185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수안(遂安)이다. 천도교구장이었던 안봉하(安鳳河)를 중심으로 나용일(羅龍一)·장성도(張聖道)·김동선(金洞宣)·이달하(李達河)·안창식(安昌植)·홍길재(洪吉載)·홍두익(洪斗益)·이응호(李應浩)·이윤식(李潤植) 등과

  • 김연 / 金演 [종교·철학/유학]

    1547(명종 2)∼1640(인조 18). 조선 중기의 의병. 아버지는 부장 두문, 어머니는 김우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 그의 백형 길과 재종형 면과 합하여 김씨 삼군자라 칭송되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면이 조종도·곽준·문위 등과

  • 김연광 / 金練光 [종교·철학/유학]

    1524(중종 19)∼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수련, 아버지는 영원군수 이상. 1555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리, 제용감첨정, 평양판관, 부현현감, 평창군수, 회양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송암유고』 한권이 남아 있다.

  • 김연순 / 金演淳 [역사/근대사]

    1881-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기독교인.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盈德)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신기동(新基洞) 구장 이현설(李鉉卨)과 이수각(李壽珏)·이

  • 김영 / 金瑛 [종교·철학/유학]

    1475(성종 6)∼1528(중종 23).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계권, 아버지는 장령 영수, 어머니는 김박의 딸이다. 1506년(연산군 12)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수찬, 정언, 교리, 장령, 경상도재상경차관, 김제군수,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

  • 김영국 / 金永國 [역사/근대사]

    미상-1919.03.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황해도 문화면(文化面)에서 시작되어 신천군(信川郡)까지 확산된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문창규·김명성 등의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종교인들의 주도로 시작되었

  • 김영근 / 金永根 [문학/한문학]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의 유학자.우국지사. 김영근(金永根)은 1865년 전라남도 강진군 신기(新基, 현 칠량면 명주리 신기)에서 태어났다. 조상 대대로 이 곳에 세거하였으며, 부친 김도순(金道淳)은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行龍驤衛)와 금갑도(金甲島) 만호(萬戶)를

  • 김영길 / 金永吉 [예술·체육/대중음악]

    1909-1985년. 일제 강점기 가수·영화배우. 창씨 개명한 이름은 나가타겐지로[永田絃次郞]이다. 출신지는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이다. 1928년 평양 제2중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동경일일신문음악콩쿠르 성악부문에서 3년 연속 입상하였다. 1

  • 김영득 / 金榮得 [역사/근대사]

    1908-1940.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유영(金幽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선산(善山)이다. 1927년 9월 서울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입하여 1930년 4월경까지 열성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수탈과 탄압으로 땅을 빼앗기고 유랑하는

  • 김영락 / 金榮洛 [종교·철학/유학]

    1831년(순조 31)∼1906년(광무 10). 조선 말기 유학자. 이병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노인직으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를 받았다. 문집으로 손자 김정준이 편집 간행한《구계집》은 이충호가 서문을, 손자 김재준이 발문을 붙였다. 문집은 시가 주류를 이루는데, 그

  • 김영란 / 金永蘭 [역사/근대사]

    1896-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공성단(共成團)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평양·순천 등지에서 독립활동을 위한 자금을 모금하고 비밀결사 숭의단을 창립하였다. 1920년 평남 등지에서 민족독립활동을

  • 김영렬 / 金英烈 [종교·철학/유학]

    ?∼1404(태종 4). 조선 전기의 무신. 1394년에 전서로 있던 중 그해 경기우도수군첨절제사가 되었다. 1395년에 수군절제사로 발탁되었다. 1400년(정종 2)에 지삼군부사로 있을 때에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1401년(태

  • 김영목 / 金永穆 [종교·철학/유학]

    1835(헌종 1)∼1910. 조선 말기의 문신. 주요 내직에 임명되다가, 1898년에 궁내부특진관에 칙임관 3등으로 올랐으며, 홍릉제조에 임명, 1899년에 전주 오목대비문 서사관, 인조대왕옥책문의 악장문제술관이 되었다. 1900년부터 2년 동안은 산릉도감 및 천릉도

  • 김영삼 / 金永三 [정치·법제/정치]

    1927년 12월 20일 - 2015년 11월 22일. 정치가. 경남 거제 출신. 1952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장택상 총리 인사담당 비서가 되었다. 1954년 26세의 최연소자로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된 후, 제5, 6, 7, 8, 9, 10, 13대

  • 김영서 / 金永西 [역사/근대사]

    1889-1959. 독립운동가. 일명 광오(光五). 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일대에서 이유석(李裕奭)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외가천리에 있던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천여명의 만세시위군중들과 독립만세를 외

  • 김영성 / 金永聲 [역사/근대사]

    1867-1959. 한말의 의병장. 전라남도 흥양 출신. 1909년 3월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모집, 휘하에 3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3월부터 5월 사이에 흥양군 대강면·남양면·남면·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4월에는 사창호곡(社倉毫谷)에서, 8월에는 과역(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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