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 총 2,226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분야 : 역사
고태영 / 高泰英 [역사/근대사]
1891-1941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제주도 성산읍(城山邑) 오조리(吾照里)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5월 성산포에서 면민씨름 대회를 개최하였을 때, 씨름구경을 하던 일본어선단 선원 2백여 명과 지방민과 격투가 벌어져, 김명선(金明善
고평 / 高平 [역사/근대사]
188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본적은 전라북도 정읍(井邑)이다. 1918년 2월 중국 국자가(局子街) 하장리(下場里) 연길(延吉) 도윤공서(道尹公署) 외교과원 박동원(朴東轅)의 집에서 이홍준(李弘俊)·이성근(李聖根)·김영학(金永學)
고형림 / 高亨林 [역사/근대사]
1907년∼1975년.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예천 출신.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대판(大阪)·나고야(名古屋) 등지에서 노동에 종사하다가 사진기술을 배워 귀국한 뒤 한때 예천군 농회(農會)지도원으로 있었다. 생활난으로 1939년 8월 만주 안동성(安東省)으로 이주,
고휴규 / 高烋圭 [역사/근대사]
1884-1954.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제주도 성산읍(城山邑) 수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제주의 민족주의 계열의 성산청년회가 주최한 성산면 체육대회에서 한국인 선원과 일본인 선원 등 2백여 명과 벌어진 싸움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고휴규는
고흥과역리민등지석묘군 / 高興過驛里珉燈支石墓群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 과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군. 전라남도 기념물 제161호. 낮은 구릉상에 동서방향으로 긴타원형을 이루고 군집되어 있으며 남방식과 개석식이 혼재되어 있고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가장 큰 것은 덮개돌의 규모가 520×267×109㎝에
고흥운대리지석묘 / 高興雲袋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총 4기가 발굴되었는데, 내부구조는 모두 지하에 판상(板狀)의 할석을 차례로 겹쳐 쌓아 네 벽과 바닥을 가진 돌널을 만든 것이고 유물은 전혀 없었다. 또한, 이 지석묘들과 가까운 지점에서 하나의 돌널무덤이 조사
고흥유둔리덕암지석묘군 / 高興油屯里德岩支石墓群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유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군. 전라남도 기념물 제159호. 남방식과 개석식이 혼재되어 있고 지석묘군의 한 가운데에 높이 376㎝, 너비 205㎝, 두께 62㎝에 달하는 입석이 있는데, 지석묘들은 이 입석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는
고흥장수리지석묘 / 高興長水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장수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이 고인돌은 13기가 분포되어 있는데, 1962년부터 시작된 해창만 간척공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저수지[長水堤]공사로 수몰되기에 이르러, 1984년 그 중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10기를
고흥중산리지석묘군 / 高興中山里支石墓群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 중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군. 47기가 모여 있는 중산 지석묘 나군에는 지석묘군의 가운데 지점에 입석 1기가 있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이 일대를 ‘선돌백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석묘와 선돌이 공존하는 유적은 드문 편이다. 고흥반도에는 128
곡부합록 / 穀簿合錄 [역사/조선시대사]
1776년(정조 즉위년) 재정 절약을 위하여 중앙 각 관서와 군영의 보유 양곡수를 조사, 보고하게 하여 이를 종합 정리한 책. 수서본으로 10권 10책이었으나, 제2·3책이 없어져 8책만 규장각도서에 유일하게 현존한다. 호조전세·선혜청대동·균역청면세결·각영군보급둔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