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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김영국 / 金永國 [역사/근대사]
미상-1919.03.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황해도 문화면(文化面)에서 시작되어 신천군(信川郡)까지 확산된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문창규·김명성 등의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종교인들의 주도로 시작되었
김영득 / 金榮得 [역사/근대사]
1908-1940.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유영(金幽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선산(善山)이다. 1927년 9월 서울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입하여 1930년 4월경까지 열성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수탈과 탄압으로 땅을 빼앗기고 유랑하는
김영란 / 金永蘭 [역사/근대사]
1896-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공성단(共成團)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평양·순천 등지에서 독립활동을 위한 자금을 모금하고 비밀결사 숭의단을 창립하였다. 1920년 평남 등지에서 민족독립활동을
김영서 / 金永西 [역사/근대사]
1889-1959. 독립운동가. 일명 광오(光五). 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일대에서 이유석(李裕奭)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외가천리에 있던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천여명의 만세시위군중들과 독립만세를 외
김영성 / 金永聲 [역사/근대사]
1867-1959. 한말의 의병장. 전라남도 흥양 출신. 1909년 3월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모집, 휘하에 3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3월부터 5월 사이에 흥양군 대강면·남양면·남면·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4월에는 사창호곡(社倉毫谷)에서, 8월에는 과역(過
김영숙 / 金永肅 [역사/근대사]
1886-1952.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 호는 백주(白舟). 충청남도 결성군(지금의 홍성군) 출신. 1911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뒤, 잠시 서울 승동소학교(勝洞小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같은해 8월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대종교의 윤세복(尹世
김영순 / 金英順 [교육/교육]
189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교육자. 본적은 서울이다. 정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오현주(吳玄洲)의 권유로 비밀결사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는 1919년 3월과 4월 사이에
김영식 / 金永植 [역사/근대사]
1899-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장성(長城)이다. 1919년 5월 김순호(金順皓)로부터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을 중심으로 임시 정부 지원 등을 위해 결성된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설립취지를 듣고서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였다.
김영재 / 金英哉 [역사/근대사]
1911-1965. 독립운동가. 별명은 왕영재(王英哉).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31년 상해로 망명, 1932년 상해에서 한인청년당(韓人靑年黨)을 조직하여 항일특무공작활동을 하였다. 같은해 4월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투탄의거(虹口公園投彈義擧)때, 윤봉길이 사용
김창언 / 金昌彦 [역사/근대사]
1899년(광무 3)∼1930년 7월 21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거주지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하다면(何多面)이다. 함경남도 단천군 하다면‧복귀면‧수하면‧이중면 지역 주민들은 평소 땔나무를 팔고 숯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치하의
김학무 / 金學武 [역사/근대사]
1911∼194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명은 김준길(金俊吉)이다. 출신지는 함경북도 온성(穩城)이다. 1938년 조선의용대를 창설한 뒤 항일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조선의용대 부지대장‧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정치지도원‧화북조선독립동맹 중앙집행위원 겸 선전부 부장
김희백 / 金熙伯 [역사/근대사]
1899∼1937.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일명 김희백(金熙百), 평안남도 대동 출신이다. 독립운동을 위하여 만주로 망명하여 북간도의 대한국민회에 가담하였다. 대한독립군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활약하였고,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 이후 독립군에 대한 일본의 대규모 군
나정구 / 羅正龜 [역사/근대사]
1886∼미상.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15년 김좌진(金佐鎭) 등이 만주에서 조직한 조선군단(朝鮮軍團)의 군사교육기관인 사관학교에서 근무하였다. 1919년 3‧1 운동 후 조직한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하여 소만류구(小萬留構)에서 한국인의 호세(戶稅) 징수
남궁억 / 南宮檍 [교육/교육]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자·언론인(1863-1939). 자는 치만(致萬). 호는 한서(翰西). 1896년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고위급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1898년 9월 《황성신문》을 창간하고 사장에 취임하였다. 1912년 상동청년학원 원장을 겸하면서 독립사상 고취,
노태준 / 盧泰俊 [역사/근대사]
1911-1970. 독립운동가. 호는 무웅(無雄). 임시정부 군무총장 백린(伯麟)의 차남이다. 1931년 3월 난징(南京)에서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4월에는 중국 중앙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교육 및 훈련을 받았다. 1936년 졸업하여 한국독립당 청년단을
문병전 / 文秉栓 [역사/근대사]
1898-1971.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풍암(楓庵) 문위세(文緯世)의 종손으로, 1898년 3월 18일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유치면(有治面) 늑룡리(勒龍里)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나 남달리 의로움이 강하고 과묵했다. 30여 세 되
민병찬 / 閔丙讚 [역사/근대사]
1885-192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민찬옥(閔璨玉)·민병찬(閔丙贊)·민병찬(閔丙璨)이다. 본적은 강원도 홍천(洪川)이다. 1919년 4월 2일 홍천군 동면(東面) 성수리(城壽里)에서 민씨(閔氏) 문중이 주동이 되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전
민영완 / 閔泳琬 [역사/근대사]
1911-1976. 독립운동가. 서울 출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가족을 동반하고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였다. 1929년 7월 임시정부 산하의 비밀단체인 화랑사(花郞社)의 총무 겸 재무간사로 임시정부를 지원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
박건웅 / 朴健雄 [역사/근대사]
1906-미상. 독립운동가·정치인. 별명은 건웅(建雄)·김정우(金政友).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26년 10월 중국 광둥(廣東)에 있던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의 보병과를 제4기로 졸업하고 중국군에 복무하였다. 그뒤 1928년 9월 상해(上海)의 중국본부한인청년동
박기상 / 朴岐爽 [역사/근대사]
1888-193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박사국(朴士國)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출신이다. 아버지는 박병돈(朴秉敦)이다. 1919년 3월 19일 이정(李挺)·이병석(李秉釋)·정영모(鄭永模) 등과 함께 전라북도 익산시(益
박은식 / 朴殷植 [역사/근대사]
1859-1925. 한말·일제강점기의 학자·언론인·독립운동가. 성리학과 위정척사사상에서 개화사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1898년에 독립협회에 가입해 회원이 되었다. 그 해 11월의 지식인들이 중심이 된 만민공동회에서는 문교부장급 간부로 활동하였다. 신민회의 원로회원으
방정환 / 方定煥 [교육/교육]
항일기의 아동문학가(1899∼1931). 1920년 일본 동양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하였다.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고, 1923년 3월 아동잡지《어린이》를 창간하였다. 1928년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서일 / 徐一 [종교·철학/대종교]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종교가(1881-1921). 호는 백포(白圃). 1911년 중광단을 조직하였고, 1919년 서로군정서를 개편하여 총재에 취임하였다. 1920년에는 청산리전투를 이끌었다. 대종교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저서로는 <삼일신고강의>, <회삼경> 등이
서재만 / 徐在萬 [역사/근대사]
1904년(광무 8) 9월 23일∼1984년 4월 19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청산면(靑山面)이다. 1923년 완도군 청산면(靑山面) 모도리(茅島里) 대모도(大茅島)에서 마을의 개량서당(改良書堂)을 후원하기 위한 배달청년회(倍達靑
서재필 / 徐載弼 [역사/근대사]
현대의 정치가·독립운동가(1864-1951). 호는 송재(松齋). 1882년 3월 별시 문과 병과에 합격하여 교서관의 부정자에 임명되었다. 1884년 12월 김옥균·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18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참판 겸 정령관이 되었으나 정변의 실패로 일본을
손병희 / 孫秉熙 [종교·철학/천도교]
항일기의 동학인·독립운동가·교육사업가(1861-1922). 호는 소소거사(笑笑居士)·의암(義菴). 1894년 동학 북접통령이 되어 논산으로 나아가 전봉준과 합세하였다. 그러나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여,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으로 피신하였다. 1897년 12월 제3세 교
안병찬 / 安秉瓚 [역사/근대사]
1854-1921.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05년 을사조약 체결시 법부(法部) 주사로 을사오적을 죽일 것과 나라를 바로잡을 것을 국왕에게 상소하였으나 오히려 경찰에 구속되었다. 1909년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의 중심인물 이용구(
안중근 / 安重根 [역사/근대사]
1879-1910. 구한말 교육가·의병장·의사(義士)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이 체결되자 북간도로 망명하였다. 1908년 6월 특파독립대장 겸 아령지구군사령관이 되어 함경북도 홍의동의 일본군과 경흥의 일본군 정찰대를 격파했으나, 회령전투에서는 5,000여 명의 적을
안창호 / 安昌浩 [교육/교육]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자(1878-1938).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 관서지부조직을 맡았고, 1898년 이상재·윤치호·이승만 등과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직을 맡았다. 1932년 4월 윤봉길의 상해 훙커우공원 의
양재홍 / 梁在鴻 [역사/근대사]
1881-미상.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화순 출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1917년 김교락(金敎洛)·정동근(鄭東根)·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동지적 결합을 이룬 뒤, 나주·함평·화순·순천 등 주로 전라남도 지역에서 자
양전백 / 梁甸伯 [역사/근대사]
1869∼1933.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호는 격헌(格軒), 평안북도 선천 출신이다. 26세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1897년 예수교장로회 전도사가 되었고,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여, 선천 북교회에서 성직자 생활을 하였다. 1919
양제안 / 梁濟安 [역사/근대사]
1860-1929. 의병장·독립운동가.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벽도(碧濤). 경상북도 영일 출신. 1876년(고종 13) 병인양요 때 격문을 만들어 척양척왜를 주장하였으며, 1894년 충청북도 진천에 의병총본영을 설치하고 의병을 모집, 훈련시켜, 1895년 이기찬(
양준명 / 梁濬明 [역사/근대사]
1876-1949.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선천 출생. 1912년 데라우치(寺內正毅)조선총독암살사건 연루 혐의로 일본경찰에 잡혀 1심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았다가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1919년 2월 신성중학교(新星中學校)교사 때 이승훈(李昇薰)의 지시로 교회목사
양창을 / 梁昌乙 [역사/근대사]
1900-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해 임시 정부의 국내주재(國內駐在) 대원(隊員)으로서 천마대(天摩隊)에 가입하여 평안북도 위원(渭原)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을 담당하였고, 또
양한나 / 梁漢拿 [역사/근대사]
1893-1976. 독립운동가·사회사업가. 부산의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나 상경하여 진명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학비조달의 어려움으로 부산으로 돌아가 1911년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제1회졸업생이 되었다. 마산 의신여학교(義信女學校)에서 7년간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양한묵 / 梁漢默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62-1919). 1902년 동학에 입교하고, 손병희 등과 함께 이용구로 하여금 진보회를 결성하게 했다. 1905년 귀국하여 헌정연구회를 조직했다. 1919년 2월 27일 김상규의 집에서 천도교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3월 1일 오후
양한위 / 梁漢緯 [역사/근대사]
1883-1949. 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0년 8월 나라를 잃게 되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독립운동에 뜻을 둔 맹보순(孟甫淳)·양기탁(梁起鐸)·이병옥(李秉玉) 등 10여명과 수시로 회합, 협의하면서 독립운동의 기본방략을 수립하고 그 기반 조성을
엄인섭 / 嚴仁燮 [역사/근대사]
생졸년 미상. 한말의 의병장. 1907년 (安重根)‧김기식(金起植)과 결의형제를 맺었고, 1908년 안중근과 함께 두만강 최하단의 일본군수비대를 급습하고 사상시키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그 뒤 1911년 연해주 한인사회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권업회(勸業會)에 가담하고,
엄창섭 / 嚴昌燮 [역사/근대사]
1891-미상.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부여 출신. 1919년 강경의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교사로 있을 때 군산의 영명학교(永明學校)학생인 강금옥(姜金玉)으로부터 3·1독립운동의 소식을 전해 듣고 3월 6·7일에 재직중인 창영학교에서 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 등
여운형 / 呂運亨 [역사/근대사]
1886-1947.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정치가. 상해에서 민단을 조직하였으며,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여 총무간사에 취임하였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에 가담하여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하였고, 광복 후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좌우합작운동 중 암살당하였다.
유관순 / 柳寬順 [역사/근대사]
1902-1920.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6년 이화학당 교비생으로 입학하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등과 1년생으로 맨앞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격렬하게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불굴의 투혼으로 옥중 항쟁을 계속하다 1920년 19세의 나이로 끝내
유동열 / 柳東說 [역사/근대사]
187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만주로 망명, ‘대한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하였다. 상해임시정부 참모총장 등을 지내고 민족혁명당을 조직하였다. 광복 후 귀국, 초대 통위부장을 지냈다. 6·25 때 납북되었다.
유동하 / 劉東夏 [역사/근대사]
1892-1918. 독립운동가. 이명은 강로(江露). 함경남도 덕원 출신. 1909년 10월 노령 코트지로의 자택에서 아버지와 안중근(安重根)·우덕순(禹德淳)·조도선(曺道先)·김성화·탁공규(卓公奎)와 더불어 구국혁신을 맹세하는 ‘7인동맹’을 조직하였다. 1909년 10
유림 / 柳林 [역사/근대사]
1894-196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인. 호는 단주(旦洲). 3·1운동 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 의정 의원과 국무위원 등을 지냈다. 광복 후 임시정부 비상국민회의 부의장·독립노동당 당수·대한국민의회 의장 등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
유형석 / 柳瀅錫 [역사/근대사]
1914-1973.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강계 출신. 강계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만주로 건너가 1932년 안동현립소학교(安東縣立小學校) 및 봉천초등학교(奉天初等學校) 등에서 수학하였다. 그뒤 항저우(杭州)의 중국항공학교에 입학하려 하였으나 거절당하
윤봉길 / 尹奉吉 [역사/근대사]
1908-1932.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의사. 1932년 4월 29일 일본왕의 생일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켰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잡혀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해 11월 18일 일본에 호송되어 20일 오사카위수형무소
이강 / 李剛 [역사/근대사]
1878-1964. 독립운동가. 호는 오산(吾山). 평안남도 용강 출신. 1902년 미주개발회사(美洲開發會社)에서 모집한 이민에 합류, 하와이로 건너가 1년간 영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1903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안창호(安昌浩)를 만나 그의 권고로 학업을 단념
이건호 / 李建鎬 [역사/근대사]
1885-195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부여군(夫餘郡) 규암면(窥岩面)이다. 전국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자 지방운동단체도 참여하였는데,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조병관(曺秉灌)·최동주(崔東柱)를 중심으로 19명이 발기하여 1907년 3월 국채보상전북
이광 / 李光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79-1966). 호는 성암(星巖). 1907년 전덕기(全德基)·이동녕(李東寧) 등이 주도하는 애국계몽단체인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주권수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만주로 망명, 이시영(李始榮)과 같이 경학사와 신흥학교를 설립하여 유
이덕주 / 李德柱 [역사/근대사]
1908-1935년. 독립운동가. 황해도 신천 출신. 1926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金九)와 조국독립을 위한 독립운동에 몸바칠 것을 서약하고 항일운동에 주력하였다. 1932년초 상해한인청년당원으로 김구로부터 유진만(兪鎭萬)·금긍호(琴兢鎬) 등과 함께 조선총독을 살해
이동녕 / 李東寧 [역사/근대사]
1869년(고종 6)∼1940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대통령대리‧주석‧국무위원장‧국무위원. 자는 봉소(鳳所), 호는 석오(石吾)‧암산(巖山), 본관은 연안(延安), 충청남도 천원(지금의 천안) 출신이다. 1892년 응제진사시(應製進士試)에
이명선 / 李明善 [역사/근대사]
1893-1932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장연군(龍淵郡) 용연면(龍淵面)이다. 신민회(新民會)에서 만주독립기지건설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때, 황해도 책임자였던 김구(金九) 선생으로부터 합류할 것을 지시 받고 1910년(융희 4) 친형 이명서
이범석 / 李範奭 [역사/근대사]
1900-1972년. 독립운동가·군인·정치가. 아버지는 문하, 어머니는 연안이씨이다. 8세 때 김해김씨를 새어머니로 맞이하였다.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1916년 항저우체육학교, 원난강무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919년 신흥무관학교 교관, 북로
이범윤 / 李範允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관리·독립운동가(1863-?). 간도시찰원과 간도관리사 때 사포대 조직과 군사훈련 실시로 청국의 조세징수 등을 거부하며 한인보호에 힘썼다. 경술국치 후 일으킨 의병으로 청산리전투 등에서 전공을 세웠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이병곤 / 李炳坤 [역사/근대사]
1921년∼1979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명 뇌명(雷明), 평안북도 용천 출신이다. 1938년 항일투쟁을 벌이던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중국에서 광복군으로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을
이병묵 / 李丙默 [역사/근대사]
1900-1931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일명 병묵(炳默)·경도(景璹). 서울 출생. 북로군정서 참모장 윤세용(尹世茸)의 사위이다. 서울 중앙학교(中央學校)에 다닐 때 이미 만주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친형 병욱(丙旭)과 연락하며 국내 항일운동상황
이병훈 / 李秉勳 [교육/교육]
1913-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교육자·의사(醫師). 본적은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순안면(順安面)이고, 출신지는 중국 남경(南京)이다. 1932년 4월 서울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를 중퇴하고,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산하의 인성
이상재 / 李商在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정치가·민권운동가·청년운동가(1850-1927). 서재필과 독립협회를 조직, 부회장으로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개혁당 사건으로 복역했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파견을 준비했다. 소년연합척후대 초대 총재, 조선일보사 사장 등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
이시영 / 李始榮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69∼1953). 1891년 문과에 급제해 우승지·궁내부 수석참·한성재판소장·고등법원 판사 등을 역임했다.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뺏기자 만주로 망명 유하현에서 신흥감습소를 설립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상해 임시정부의 법무총장을 역임했
이영범 / 李榮範 [역사/근대사]
1909-1961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공산면(公山面)이다. 1926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에 재학하면서 비밀리에 광주독서회를 조직하였으며, 그해 11월 3일에 일어났던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에도 독서
이용의 / 李容儀 [역사/근대사]
1887-미상.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출신지는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용정리(龍井里)이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터지자 당시 지방의 유지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이만의(李萬儀) 등은 거사를 미리 준비하고 3
이윤재 / 李允宰 [교육/교육]
항일기의 독립투사·국어학자·사학가(1888∼1943). 한글맞춤법 제정에 참여하였으며, 조선어사전 편찬 등 한글 보급을 통한 민족운동을 하였다. 조선어학회 《우리말 사전》 편찬위원을 맡았고, 진단학회로 국사 연구에 참여하였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사하였다. 저서로는
임국정 / 林國楨 [역사/근대사]
1894-1921.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 뒤 간도에서 한상호·최봉설 등과 함께 철혈광복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북로군정서 특파원으로 간도일본영사관에 송금되는 돈을 탈취하여 무기를 구입·공급하다가 밀고로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임규 / 林圭 [역사/근대사]
1867-194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우정(偶丁). 1895년(고종 32) 일본에 가서 게이오의숙 중학교 특별과를 거쳐 동 전수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의 여러 사립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쳤다. 최남선으로부터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통고문과 선언서를 받아 일본
임득연 / 林得淵 [역사/근대사]
1896-195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安東) 임하(臨河)이다.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유북실(柳北實)·임춘섭(林春燮)·임범섭(林範燮)·임찬일(林燦逸)·김원진(金源鎭)·임동숙(林東淑)·임윤익(林潤益)·박유석(朴有石
임백윤 / 任白允 [역사/근대사]
188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광주(廣州) 도척(都尺)이다. 1907년(융희 1) 7월 24일 일제에 의해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이 체결되자 이에 격분하여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의병 봉기가 일어났는데, 같은 해 8월 의병을 일으켰던 임옥여(任玉
임병국 / 任秉國 [역사/근대사]
1882-1957. 한말의 의병장. 이명은 민호(珉鎬). 전라남도 보성 출신. 서민출신의 의병장이 출현한 후기 의병운동의 중심지였던 보성에서 안규홍의진에 참가하여 좌우익부장(左右翼副將)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2월 이후 파청대첩(巴靑大捷)·진산대첩(眞山大捷)·원봉산
임병극 / 林炳極 [역사/근대사]
188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도이다. 1917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9년 북간도 대한국민회 군사령부 제2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지나혁명단을 조직하고 병기류 구입에 힘썼다. 1921년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피복과장을
임병직 / 林炳稷 [역사/근대사]
1893-1976.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소죽(小竹). 충청남도 부여 출생. 1913년 이승만(李承晩)의 알선으로 미국 오하이오 디킨스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재학중 《한국학생평론》을 창간하고 그 편집장이 되어 일제의 한국 강점을 폭로하면서 세계자유 우방에게 독립지원을
임봉주 / 林鳳柱 [역사/근대사]
1875-1921년. 독립운동가. 일명 세규(世圭). 경상북도 영주 출신. 1915년 풍기의 광복단과 대구의 조선국권회복단을 통합하여 조직된 대한광복회에 가담하였다. 1916년 권상석(權相錫)·우재룡(禹在龍) 등과 함께 친일 부호 장승원(張承遠)을 처단하려다 실패하고,
임성우 / 林成雨 [역사/근대사]
1889-197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미국 하와이이다. 1914년 6월 하와이에서 박용만(朴容萬)이 창설한 국민군단(國民軍團) 훈련대소대 참위로 활동하였다. 1925년 4월 하와이에서 조직된 조미구락부(朝美俱樂部)에 오운
임성칠 / 林成七 [역사/근대사]
1901-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거주지는 중국 만주(滿洲)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이다. 중국 연길현에 있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조사를 받던 도중에 탈출을 시도하여 성공하였으나, 연길현 모루구(母樓溝)에
임수명 / 任壽命 [역사/근대사]
1894-1924년. 여성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진천 출신. 1912년 서울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할 때 일본경찰에 쫓겨 환자로 가장하여 입원하고 있던 신팔균(申八均)과 1914년 결혼하였다. 그뒤 신팔균과 함께 만주에서 비밀문서의 전달, 군자금의 모금, 독립군후원 등에 힘
임수명 / 林守明 [역사/근대사]
1897-197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임경(林鏡)·임작주(林作柱)이다. 본적은 전라북도 정읍(井邑)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전라남도 여수(麗水)이다. 조부는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崔益鉉)의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임병찬(林炳瓚)이고, 부친
임예환 / 林禮煥 [역사/근대사]
1865-194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연암(淵菴).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고, 1919년 3월 1일 손병희·오세창 등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한 뒤 검거되었다. 출옥 후에도 계속 항일운동을 하였다.
임용상 / 林龍相 [역사/근대사]
1877-1958. 항일기의 의병장. 자는 충서(忠瑞). 호는 중호(中虎).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조직하여 동해창의대장으로 청하·영덕 등지의 주재소를 습격했고, 1909년 울산·언양·양산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이후 보현산에서 산남의진
임의탁 / 林義鐸 [역사/근대사]
1891-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동환(東煥)·창식(昌植). 평양 출신. 1911년 일제요인을 사살할 목적으로 경술결사대(庚戌決死隊)를 조직하고 그 대장이 되어 상경, 1912년 일제 경무부의 일본인 경부(警部) 니시카와(西川)를 사살한 뒤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
임이걸 / 林利杰 [역사/근대사]
1898-1961. 독립운동가. 평양 출신. 일찍이 평양숭실학교 재학생과 졸업생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비밀결사단체인 조선국민회(朝鮮國民會)에 가담하였고, 황해도 안악군 동창면에 설립되었던 사립 배영학교(培英學校)에서 교편도 잡았다. 그러나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일제
임재남 / 林栽南 [역사/근대사]
1915-1981. 광복군. 본관은 울진(蔚珍). 평안남도 평양 출신. 서당에서 10여년간 한학을 배우고 독립군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여, 1937년 11월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타이위안(太原)에서 항일유격대와 함께 활동하다가 1939년 시안(西安)의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임정근 / 林正根 [역사/근대사]
1913-1972. 광복군. 본관은 나주(羅州). 독립군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1940년 1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한 뒤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특과총대학원대한청반(中國中央戰時幹部訓鍊第四團特科總大學員隊韓靑班)을 수료하고 1940년 9월 한국
임정옥 / 林貞玉 [역사/근대사]
1914-1934. 일제 강점기 항일군. 출생지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이다. 남편은 사회주의운동가이자 혁명군 정치부주임을 지낸 이광림(李光林)이다. 1929년 부모를 따라 거주지를 흑룡강성(黑龍江省) 목릉현(穆陵縣) 신안촌(新安村)으로 옮겼다. 193
임정창 / 林貞彰 [역사/근대사]
미상-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벽동(碧潼)이다. 1910년(융희 4)을 전후하여 만주 지역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 독립운동기지가 활발하게 조직될 때 참여하여 중국 봉천성(奉天省) 관전현(寬甸縣)에서 활약하였다.
임종구 / 任鍾龜 [역사/근대사]
1885-미상.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청양 출신. 백남식(白南式)·윤태병(尹太炳)·윤상기(尹相起) 등이 1919년 8월경에 주도, 조직한 비밀결사인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에 가입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상해임시정부의 지원을 목적한 군자금모금활동을 폈다. 이때 백
임창무 / 林昌茂 [역사/근대사]
1893-194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충청북도 괴산읍(槐山邑) 증평면(曾坪面) 증평리(曾坪里) 925에 태어났다. 독립운동 당시의 주소지는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만경면(萬頃面) 만경리(萬頃里)이다. 1919년 그는 당시 만경공립보통학교의(萬頃公立普通學校) 훈
임치정 / 林蚩正 [역사/근대사]
미상-1932. 독립운동가. 호는 춘곡(春谷). 평안남도 용강 출신. 이조판서 국로(國老)의 아들이다. 1904년 미국에 건너가 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교포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조직하여 간사로 활동하는 동시에 그 기관지인 《공립신보 共立新報》를 간행하였으며
임태일 / 任泰馹 [역사/근대사]
1899-미상.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전라남도 광양군(光陽郡) 진월면(津月面) 송금리(松琴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15일 광양군 진월면(津月面) 송금리(松琴里)에서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서당 학생들과 같이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준비를 갖추었다. 이날
임평 / 林平 [역사/근대사]
1908-194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1925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이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현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여 1929년까지 수학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光州學生運動)이 발생하여 전국적으로 항일독
임혁규 / 林爀奎 [역사/근대사]
1891-196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영화(永化), 호는 계산(溪山)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삼향면(三鄕面) 출신이다. 부는 임병욱(林炳郁)이다. 독립을 위해 문화운동에 뜻을 두고, 1936년 이우식(李愚式), 장현식(張鉉植)
임현주 / 林顯周 [교육/교육]
1858-1934년. 일제강점기 의병·교육자. 자는 희서(希瑞), 호는 경당(警堂)이다.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전라북도 남원(南原)에서 태어났다.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으로 12의사(十二義士)의 한 사람이다. 최익현에게 의병을 일으킬 뜻을 전하고 남원에
임호일 / 林浩逸 [역사/근대사]
1890-19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소은(昭隱)이다. 출신지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1919년 3월 21일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臨河面) 금소동(琴韶洞)·신덕동(新德洞)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김원진(金源鎭)·노말수(盧末守)·박유석
장건상 / 張建相 [역사/근대사]
1883-197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소해(宵海). 중국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했는데, 상해 임시정부의 외무차장과 학무부장 등을 역임했다. 광복 후 여운형 계의 조선인민당, 근로인민당의 부위원장을 지냈고, 5·16 이후 혁신당 사건으로 검거되기도 했다
장경례 / 張慶禮 [역사/근대사]
1913-199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 현 광주광역시)이다. 1928년 11월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동학이던 박옥련(朴玉連)·남협협(南俠俠)·장매성(張梅性)·고순례(高順禮)·이금자(李錦子)·박채희(朴采姬)
장경범 / 張慶範 [역사/근대사]
1898-197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북도 개성(開城) 상도면(上道面)이다. 1919년 3월 29일 개성(開城) 상도면 상도리(上道里)·대성면(大聖面) 풍덕리(豊德里)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이기춘(李起春)·신선명(申善明) 등과 함께 주도하여 약
장경탁 / 張炅鐸 [역사/근대사]
1923-1945.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경주 출신. 1939년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 뒤 중국 북간도 용정(龍井)일대에 이주, 16세의 소년으로 항일운동에 참가하였다. 1942년 국내에서 민족운동을 전개하기로 한 뒤 귀국하여 함경북도경흥군 아오지
장기영 / 張基永 [역사/근대사]
1903-198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석정(石正). 상해임시정부의 시베리아기관인 한인군사위원회의 위원으로 활약하다가 일본 주오대학, 미국 버틀러대학, 인디애나주립대학을 졸업하였다. 1932년 워싱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위원으로 임명되었
장덕수 / 張德秀 [역사/근대사]
1895-194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설산(雪山). 1916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1920년 4월 〈동아일보〉 창간과 더불어 초대 주필이 되었다. 1934년에는 임시정부 재무행서 뉴욕 지부 책임자로 독립운동자금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장덕진 / 張德震 [역사/근대사]
미상-1924. 항일독립운동가. 황해도 재령 출신. 붕도(鵬道)의 아들이다. 1920년 8월 하순 미국의원단 49명이 내한할 때, 광제청년단장(廣濟靑年團長) 오동진(吳東振)의 명을 받고 박태열(朴泰烈) 등과 황해도일대의 일제기관을 폭파하려 하였으나, 거사계획이 사전에
장두량 / 張斗良 [역사/근대사]
1895-1954.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부령 출생. 1919년 3·1운동 당시 청진부(淸津府) 신암동(新岩洞)·포항동(浦項洞)에서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부령군 청암면(靑岩面) 자작동(自作洞)에 거주하고 있던 그는 월산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열람하고, 또 서울 및
장두언 / 張斗彦 [역사/근대사]
1881-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에 있는 국민회(國民會)의 통신부장(通信部長)으로 활약하였다. 일본군에 체포되는 과정에 저항하다가 화룡현 서동포(西洞浦)에서 피살되었다. 1991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
장두환 / 張斗煥 [역사/근대사]
189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7년 대한광복단에 입단하여 각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고 조달하는데 힘썼다. 이종국의 밀고로 발각되어 붙잡혔고, 복역하던 중 1921년 4월 옥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