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종교·철학 총 4,272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분야 : 종교·철학
최치원 / 崔致遠 [종교·철학/유학]
신라 말의 유학자. 869년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거기에서 과거급제했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유명한 격문을 지었다. 885년 귀국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만년에는 명산대천을 찾아 두루 다녔다. 유, 불, 선 3교를 조화시키고 융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즉 유교의 '인
최태용 / 崔泰瑢 [종교·철학/개신교]
1897-1950년. 목사, 복음교회의 창설자. 호는 시남(是南). 함경남도 영흥 출신. 청년기에 수원농림학교에 입학하여 3년 동안 공부하였으며 이 시기에 기독교인이 되었다. 졸업 후 연희전문학교 농업실습지도원으로 2년간 근무하며 신앙활동을 계속하다가 1920년 일본
최한기 / 崔漢綺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실학자·과학사상가(1803∼1879). 적극적으로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입하였고 서양의학서인《신기천험》을 저술하는 등 서양학문을 소개하는데 힘썼다. 김정호와도 친분이 두터웠고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나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현 / 崔晛 [종교·철학/유학]
1563(명종 18)∼1640(인조18). 조선 중기의 문신. 이준 증손, 할아버지는 치운, 아버지는 심, 어머니는 정희좌의 딸이다. 정구·고응척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도처에서 공을 세웠고, 1598년 원릉참봉이 되었다
최홍전 / 崔弘甸 [종교·철학/유학]
1636(인조 14)∼1702(숙종 28). 조선 후기의 문신. 사전 후손, 할아버지는 몽득, 아버지는 남진이다. 1679년(숙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각 조의 낭관 등을 역임하다가 1689년 기사환국 때 화를 당하여 관직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은거하였다
최황 / 崔璜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유학자(1783∼1874). 벼슬은 의금부도사·면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글씨에 능하였으며 시문에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구암부묵》·《제자초략》 등이 있다고 전한다.
최효술 / 崔孝述 [종교·철학/유학]
1786년(정조 10)∼1870년(고종 7).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식, 어머니는 정종로의 딸이다. 정종로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동래부사 이휘령, 어사 박규수와 임응준 등이 번갈아 천거하여 1860년(철종 11) 장릉참봉에 임명, 돈령부도정, 부호군에 이르렀다
최흥원 / 崔興遠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05∼1786).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이 된 후 세자익위사좌익찬에 이르렀다.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규약을 세우고 선공고·휼빈고 등을 두었다. 저서로는《백불암집》이 있다.
최희량 / 崔希亮 [종교·철학/유학]
1560(명종 15)∼1651(효종 3).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최영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상중에 있었기 때문에 나아가 싸우지 못하였고, 1594년 무과에 급제한 다음, 당시 충청수사로 있던 장인 이계정을 돕도록 천거되어 선전관
추담집 / 秋潭集 [종교·철학/유학]
성만징의 문집. 8권 3책. 목활자본. 간행연대 미상. 권1은 시, 권2에서 권5까지는 100여명에 가까운 인물들에게 보냈던 간찰들이 수록, 권6은 기문과 제발, 권7은 잡저와 제문, 축문, 행장, 전, 잡기, 그리고 권8에는 부록으로 저자에 대한 묘표와 가장,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