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총 10,287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조선
모재집 / 慕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김안국의 시문집. 15권 7책. 목판본. 권두에 유희춘의 서문과 권말에 허엽의 발문이 있다. 권1∼8에 사 1편, 부 4편, 시 1,868수, 권9에 표전 37편, 주 2편, 교서 5편, 유서 1편, 전지 2편, 서 2편, 소장 4편, 의 4편,
모절 / 旄節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의장에 사용한 기. 홍색으로 물들인 상모뭉치와 이 뭉치 위에 금동으로 도금한 덮개를 씌워 만든 털뭉치 7개를 차례로 늘어뜨려 대나무 장대의 끝에 장식되어 있는 주칠을 한 용의 입속 고리에 매달아 만들었다. 용도는 기우제소가의장·왕비의장·왕세자빈의장·왕세손의장
모주집 / 茅洲集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문인 김시보(金時保)의 시문집. 10권 5책. 활자본. 권1∼8에는 시 1,065수, 부(賦) 5편, 권9에 서(書) 17편, 서(序) 4편, 기(記) 3편, 제(題)·발(跋) 각 1편, 권10에 묘지명 9편, 행장 3편, 제문 9편, 애사 3편 등이 수
모하당술회 / 慕夏堂述懷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에 김충선(金忠善)이 지은 가사. 총462구. 줄거리는 제1단이 예의의 나라 조선국을 흠모하다가 가토(加藤淸正)의 선봉장이 되어 출정함에 귀화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음을 말하고, 제2단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예악과 풍속에 감탄하여 투항하게 되었음과, 제3단은 귀
모화관 / 慕華館 [정치·법제/외교]
중국사신이 유숙하던 숙소. 1430년(세종 12)에 모화관(慕華館)으로 개칭되었다. 1433년(세종 15)에 개축하였는데 남쪽에는 방지(方池)가 있고 주위에는 버드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또 입구에는 영조문(迎詔門)이 있었는데 중국사신 설정총(薛廷寵)이 ‘맞이하는 것이
목계서원 / 牧溪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방목리에 있는 서원. 1700년(숙종 26)에 산청의 유림들이 동곡(桐谷) 이조(李晁, 1530∼1580)의 학문과 정신을 추모하고자 두릉사(杜陵祠)를 건립하였다. 1708년(숙종 34)에 이건하여 두릉서원(杜陵書院)으로 승원하여 급고재(汲古齋)
목계진 / 牧溪津 [지리/인문지리]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의 남한강가에 있는 조선시대의 나루. 강의 진도(津渡)는 그 당시 사람과 말의 왕래나 물자의 운송로로서 그 구실이 매우 컸으며, 특히 목계진은 강 건너 가금면 가흥리에 있었던 가흥창(加興倉)으로부터 원주ㆍ제천ㆍ청풍 등지로 통하는 중요한 나루였다.
목내선 / 睦來善 [종교·철학/유학]
1617(광해군 9)∼1704(숙종 30). 조선 후기의 문신. 세칭 증손,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첨,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서흠, 어머니는 권탁의 딸이다. 허목의 문인이다.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교리·판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672
목단병풍 / 牧丹屛風 [정치·법제]
목단을 그려 넣은 병풍. 병풍은 그림이나 글씨를 8, 10, 12폭 등의 나무틀에 비단과 함께 발라 장황한 것으로가례나 책례, 국장 등의 행사 시 의례용으로 쓰였다. 목단은 부귀를 의미하는 꽃으로 여겨져 가례 때 목단병풍이 주로 사용되었다.
목동문답가 / 牧童問答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국한문필사본. 내용은 제목에서 살필 수 있듯이, 문가(問歌)와 답가(答歌)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전반부인 문가와 후반부인 답가가 대조적인 주제를 부각시킴으로써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편으로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입신양명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