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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김숭겸 / 金崇謙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시인.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 아버지는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김창협(金昌協)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로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의 딸이다. 일찍이 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워서 깊이 통달하였고, 서법 또한 절묘하였다. 비록 19세로 요절했으나, 그 뜻이
김숭덕 / 金崇德 [종교·철학/유학]
1732년(영조8)∼1776(영조 52). 조선 후기의 진사. 부친은 김양현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 진사 3등 64위로 합격하였다. 묘소는 선산 진륵동 병향에 있다.
김승경 / 金升卿 [종교·철학/유학]
1430(세종 12)∼1493(성종 24). 조선 전기의 문신. 계림군 김균 증손, 할아버지는 김중성, 아버지는 지중추원사 김신민, 어머니는 홍수명의 딸이다. 1456년(세조 2) 사용으로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예조참판·대사헌에 이르렀다. 그는 벼슬길에 오
김승곤 / 金勝坤 [역사/근대사]
191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민(黃民)·호영(胡英)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본적은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담양읍(潭陽邑)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서울 성동구(城東區) 금호동(金湖洞)이다. 1933년 중국 망명 후 9월 1일 입교
김승기 / 金勝基 [역사/근대사]
1924-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이산면(伊山面)이고, 거주지도 경상북도 영주이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강제 징용과 각종 수탈을 만행하자, 일본의 강압적인 행위에 분노하여 야학 교사로 활동을 하는 한편 일본
김승만 / 金承萬 [역사/근대사]
미상-1935. 독립운동가. 호는 죽림(竹林).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뒤에 신의주로 이거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 안동현에서 이륭양행(怡隆洋行) 주인인 영국사람 쇼우(Show, G.)의 집을 근거로 여순근(呂淳根)·김두만(金斗萬)·오동진(吳東振)·홍
김승민 / 金升旼 [역사/근대사]
1872-1931.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함주 출신. 1906년 비서감(祕書監)으로 재직할 때 항일의병과 내통했다는 소위 밀칙사건(密勅事件)에 관련되어 2년간 복역하였다. 1909년 헤이그특사사건에 연좌되어 다시 6개월간 복역한 뒤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0년 봉천(
김승빈 / 金承彬 [역사/근대사]
1895-198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명은 김병주(金炳疇)이다. 출신지는 평안남도 강서이다. 부친 김경서(金慶瑞)와 모친 박씨(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0년(융희 4)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1915년 서울의 구황실 근위대에 입대해 근무하였다. 1
김승옥 / 金升玉 [역사/근대사]
1889-196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전라북도 고창(高敞) 출신이다. 1919년 3월 19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고창읍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오동균(吳東均)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국민휘보’, ‘조선독립가’ 등 문서를 등사하며 추진하다
김승학 / 金承學 [역사/근대사]
1881-196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07년 정미조약 체결 때 서울 종로에서 반대연설을 하였으며,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평북독판부 국내특파원으로 선발되어 평안도·황해도일대에 연통제를 조직하고 88개소에 달하는 독립단 지단을 설치, 운영하였다.
김시구 / 金蓍耉 [종교·철학/유학]
1724(경종 4)∼1795(정조 19).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김정모이고, 아버지는 장령 김광운이며, 어머니는 채경전의 딸이다. 김광진에게 입양되었다. 성리학에 능했다. 1754년(영조 30) 증광 문과에 급제한 후 검열이 되었다가 찰방으로 쫓겨났다. 지
김시민 / 金時敏 [종교·철학/유학]
1681(숙종 7)∼1747(영조 23).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호조정랑 김성후, 어머니는 임원기의 딸이다. 김창협·김창흡의 문인이다. 1732년(영조 8) 선공감역이 되고, 장례원사평·사옹원주부·사직서영·종묘서영·의빈부도사·진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
김시백 / 金時伯 [역사/근대사]
1887-1950. 항일기의 의병장.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영월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1908년 소모장으로서 강원도·경상북도·충청북도 일대에서 의병모집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결국 영주에서 붙잡혀 징역 10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다. 건국포장
김시보 / 金時保 [종교·철학/유학]
1658년(효종 9)~1734년(영조 10).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광현, 조부는 김수인, 부친은 김성우이다. 외조는 윤형성, 형으로 헌간공 김시걸이 있다. 1684년(숙종 10) 식년시 진사 1등에 3위로 합격하였다. 관직은 선공부정을 지냈다. 손자로 김이곤이
김시빈 / 金始鑌 [종교·철학/유학]
1684(숙종 10)∼1729(영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통덕랑 김정휘, 어머니는 이상언의 딸이다. 1702년(숙종 28)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필선을 거쳐 1724년(영조 즉위년) 장령이 되어 영조의 탕평책을 두둔하다
김시성 / 金是聲 [종교·철학/유학]
1602(선조 35)∼1676(숙종 2). 조선 중기의 무신. 증조부는 김영, 아버지는 김사행이다. 1637년(인조 15)에 무과에 급제, 1644년 익찬이 되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시종하여 심양에 다녀왔다. 1648년 충청수사가 된 뒤 강계부사·함경남북병사·어영중군
김시숙 / 金時淑 [역사/근대사]
1880-193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여성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 출신이다.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한 후, 숙부 김문주(金汶柱)의 권유로 40세의 늦은 나이에 글을 배워, 개화여성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여수원(
김시습 / 金時習 [종교·철학/유학]
1435(세종 17)∼1493(성종 24). 조선 초기의 학자·문인.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여 중이 되었다. 1463년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사업을 도왔고, 우리나라 최초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다. 유불교체기에 태어나 유교와
김시양 / 金時讓 [종교·철학/유학]
1581(선조 14)∼1643(인조 21). 조선 중기의 문신. 김언묵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석, 아버지는 비안현감 김인갑, 어머니는 남양 홍씨로 서윤 홍이곤의 딸이다. 1605년(선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전라도도사, 예조정랑, 도원수, 판중추부사를
김시연 / 金始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0∼?). 대사헌 김노의 아들, 궁내부특진관 김완수의 아버지이다. 전라도관찰사 때 국고 탐장의 죄로 탄핵 받아 자자형을 받고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고종의 특지로 풀려나 1875년 형조판서에 올랐으나 강화도조약으로 혼란스런 틈을 타 조정 비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