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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홍계영 / 洪啓英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관수재유고』, 「희설」 등을 저술한 문인. 아버지는 우채(禹采)이며, 어머니는 조씨(趙氏)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질이 특출하여 8세 때 지은 「연적명 硯滴銘」은 널리 알려졌다. 문중에서 천리지구(千里之駒)주 01)를 얻었다고 기대하는 바가 컸으나 19세에
홍계유 / 洪啓裕 [종교·철학/유학]
1695년(숙종 21)∼1742년(영조 18).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홍처심, 조부는 홍수항, 부친은 홍우이, 모친은 이팽령의 딸이다. 처부는 이횡이다. 1732년(영조 8) 성균관 제술시험에서 수석, 1733년(영조 9)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수찬으로
홍계적 / 洪啓迪 [종교·철학/유학]
1680(숙종 6)∼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처후 증손, 할아버지는 수환, 아버지는 우석, 어머니는 이중린의 딸이다. 170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고, 대사헌, 강화유수,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수허재유고≫가 있다.
홍계희 / 洪啓禧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3∼1771). 이재 문인, 1748년 통신상사로 일본에 다녀 온 뒤, 비변사당상·충청도관찰사 등을 거쳐, 병조판서로 균역법 제정을 주관했다. 이후 이조·형조·병조·호조·예조의 판서 및 예문관대제학 등을 지냈다. 글씨에도 능하했고, 저서로는《삼
홍관후 / 洪寬厚 [역사/근대사]
1890년(고종 27)∼1971. 독립운동가. 일명 재범(在範).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홍면(洪) 등이 전개한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사강 장날인 28일 홍면 등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일본인
홍국영 / 洪國榮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8∼1781). 영조 말년 벽파의 횡포 속에서 세손(뒤의 정조)을 보호하여, 정조 때 도승지·대제학·이조참판·대사헌 등을 지냈다. 정조의 총애와 두터운 신임, 누이동생 원빈에 힘입어 세도정권을 누리다가, 왕비 효의왕후를 독살하려다 발각되어, 집
홍귀달 / 洪貴達 [종교·철학/유학]
1438(세종 20)∼1504(연산군 10). 조선 전기의 문신. 순의 증손, 할아버지는 득우, 아버지는 효손, 어머니는 노집의 딸이다. 1460년(세조 7)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464년 겸예문에 등용, 예문관봉교, 1466년 설서가 되고 선전관을 겸하였다. 중
홍기조 / 洪基兆 [역사/근대사]
1865∼193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유암(游菴). 동학에 들어가 동학혁명에 가담했으며, 1919년 손병희(孫秉熙) 등 천도교 간부들과 민족대표로서 서명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참여한 뒤,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천도교의 도사·장로로
홍기호 / 洪基鎬 [종교·철학/유학]
1868년(고종 5)∼1938년. 일제강점기의 유학자. 자는 무익(武益)이고, 호는 현산(賢山)이며, 다른 이름으로 홍성호(洪性鎬)가 있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경상남도 진주(晋州) 홍지동(洪旨洞)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홍병건(洪炳建)이며 어머니는 수원백씨(水
홍길주 / 洪吉周 [종교·철학/유학]
1786년(정조 10)∼1841년(헌종 7).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이자 경학자이다. 부는 홍인모이다. 형은 대제학을 지낸 홍석주, 동생은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이다. 30대에 벼슬의 뜻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삼국지연의》를 읽는 법이나 대인관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