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근대 총 3,894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근대
한흥교 / 韓興敎 [역사/근대사]
1885-1967. 독립운동가. 일명 진산(震山)·헌산(憲山). 부산 출생. 1911년 10월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혁명군 구호의장(救護醫長)으로 쑤저우(蘇州)·전장(鎭江) 등 전선에 나가 참전하였다. 1912년 북벌혁명군홍십자회대장(北伐革命軍紅十字會隊長)에 임명되었으며
한흥근 / 韓興根 [역사/근대사]
1886-1948.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백암(白岩). 함경남도 원산 출신. 응구(應球)의 아들이다. 어려서 향리에서 사서삼경을 수학하다가 근대화에 관심을 가지고 원산 보명학교(普明學校)를 졸업한 뒤 측량학교(測量學校)를 다시 이수하였으며, 20세
한희룡 / 韓羲龍 [역사/근대사]
1888-197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한의룡(韓義龍)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용강(龍岡)이다. 1919년 서울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을 시발점으로 용강군 일대에서도 소규모 시위운동과 집회들이 산발적으로 시행되자 강예순(姜禮舜)·최용선(崔龍善) 등이
함대훈 / 咸大勳 [문학/현대문학]
1906-1949년. 신극운동가·소설가·번역문학가. 호는 일보(一步). 황해도 송화 출생.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금융곡물무역에 근무하였다. 그뒤 일본대학 경제과에 입학한 후 1931년 동경외국어학교 노어과(露語科)를 졸업하고 해외문학파 동인으로서 문단에 등장하였다
함북남부탄전 / 咸北南部炭田 [경제·산업/산업]
함경북도 남부의 경성·길주·명천·학성군 등에 걸쳐 있는 탄전. 이곳의 갈탄은 일반적으로 수분이 많으나 불이 잘 붙고, 매연이 적으므로 가정용 연료탄으로 적당하다. 또한, 기선·기관차의 연료로 환영을 받고, 더욱이 북한지방에 유지·마그네사이트·제지 등의 공업이 시작됨에
함북북부탄전 / 咸北北部炭田 [경제·산업/산업]
함경북도 북부의 회령에서 아오지에 이르는 두만강연안 일대에 분포하는 탄전. 두만강연안의 지층은 제3기층으로 전국 갈탄 매장량의 60% 가량 되는 약 3억톤을 차지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갈탄을 매장하고 있다. 회령군에는 봉의(鳳儀)·계림(鷄林, 일명 회령탄광)
함석은 / 咸錫殷 [역사/근대사]
1892-1928.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평양의 숭덕학교(崇德學校)교원으로 평안도 지방 학생운동의 책임자가 되어 평양의 각 학교 교사 및 학생을 규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함세덕 / 咸世德 [예술·체육/연극]
1915-1950년. 극작가. 전라남도 목포 출생. 인천광역시 강화에서 자라, 서울 선린 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찍부터 극작가의 꿈을 가지고 충무로의 일한서방(日韓書房)에 취직하여 많은 책을 읽는 한편 유치진(柳致鎭)에게 개인적으로 극작수업을 받았다. 1936년 단막
함수만 / 咸壽萬 [역사/근대사]
1907-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마산면(馬山面)이다. 전주신흥학교(全州新興學校) 교우회(校友會) 임원 등을 역임하던 중 1929년 11월 3일에 발발한 광주학생운동으로 인해 민족의식이 크게 고취되었다. 이에 개교 22주년
함찬근 / 咸贊根 [역사/근대사]
미상-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초순 이상룡(李相龍) 등을 중심으로 서간도(西間島) 유하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에서 조직된 한인자치기구 한족회(韓族會)의 구도검찰(區都檢察) 등을 역임하면서 한족회의 자치조직을 효율적으로 지도하였으며, 재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