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근대 총 3,894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근대
한주교 / 韓柱敎 [역사/근대사]
1907년(융희 1)∼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정평군 광덕면이다.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며, 흥남공장 노동정세를 조사하고 연구회를 결성하여 좌익운동 이론 연구에 힘썼다. 이후 연구회를 개편하여 좌익노동조합결성준비회
한진교 / 韓鎭敎 [역사/근대사]
1887-1973. 독립운동가. 호는 송계(松溪). 평안남도 중화 출신. 1914년 6월 중국 상해(上海)로 이주하여 해송양행(海松洋行)을 설립, 경영하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독립운동자금으로 헌납하였으며, 홍성린(洪成麟)·선우 혁(鮮于赫)과 협의하고 인성소학교(
한진희 / 韓軫熙 [예술·체육/체육]
1895년(고종 32)∼1976년. 유도인‧교육자. 함경남도 함흥 출생이다.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귀국하여 1923년 중앙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유도사범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조선강무관(朝鮮講武館)이라는
한징 / 韓澄 [언어/언어·문자]
1887-1944. 항일기의 한글학자·독립운동가. 호는 효창(曉蒼). 시대일보·조선중앙일보 등의 기자로 민족언론창달에 노력했다. 조선어학회에 가입하여 이윤재(李允宰) 등과 함께 조선어사전편찬전임위원이 되었고,〈한글맞춤법〉을 제정하고 조선표준어사정위원이 되어 표준어제정
한천당유고 / 寒泉堂遺稿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인 오재정의 시문집. 4권 2책. 목활자본. 이 책은 원집이 유실되어 7대손 성수가 편집하여 1906년 새로 간행하였다. ≪한천당유고≫ 권두에 송병찬의 서문이 잇다. 권말에 7대손 정수의 발문이 있다. 권1은 시 15수, 서 1편, 묘표 2편, 제문 1편
한청통상조약 / 韓淸通商條約 [정치·법제/외교]
1899년 한국과 청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문 1899년 9월 11일 대한국의 전권(全權) 박제순(朴齊純)과 대청국의 전권 서수붕(徐壽朋) 사이에 체결된 한·청 양국의 우호·왕래·통상에 관해 조약하였다. 이 조약은 당시 한청이 서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였는지를 알려준다.
한태석 / 韓泰錫 [역사/근대사]
1876-1949.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청양 출생. 향리에서 서당교육을 받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충격을 받고 홍성의 민종식(閔宗植)의병부대를 찾아가 합류, 항일투쟁에 적극 가담, 활동하였다. 그뒤 독자적으로 충청남도 홍산(鴻山) 지치(支峙)마을에
한협증시문서 / 韓協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증규장각제학 한협(韓協)에게 '문목(文穆)'이란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근학호문왈문 중심현모왈목'이라 적어 문목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장서각에는 1910년 8월 25일 대군사부를 지낸 고 한협을 정2품 자헌대부 규
한훈 / 韓焄 [역사/근대사]
1890-1950.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성초(聖初). 호는 송촌(松村). 의병활동을 하다가 만주로 망명했고, 광복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광복회로 개편되어, 강화된 항일전을 전개하고 친일파 숙청활동을 하던 중 발각되자 재차 만주로 망명했다. 1920년 암살단과
한흥 / 韓興 [역사/근대사]
1888-195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연해주의 권업신문사 통신원과 간북북부총판부 서기 등으로 항일운동을 했고, 군자금 조달을 하다가 붙잡혀 복역한 뒤, 신간회 상무간사로 활약하였다. 함흥중앙학원·경성여자상업학교·함흥대흥상업학원을 설립하여 교육에 힘썼고, 함흥대동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