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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한영숙 / 韓英淑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40호 「학춤」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고전무용가. 충청남도 천안출생. 13세때 할아버지 성준(成俊)으로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첫 무대공연으로 1937년 10월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한성준무용발표회에서 승무·학
한영애 / 韓永愛 [역사/근대사]
1920-미상. 일제 강점기 광복군. 다른 이름은 한말다(韓末多)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平壤)이다.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광복군(光復軍)에 입대하여 제2지대(支隊) 대장 이범석 휘하의
한온 / 韓蘊 [종교·철학/유학]
?∼1555(명종 10). 조선 중기의 무신. 관직은 가덕첨사·장흥부사에 이르렀다. 1555년(명종 10) 왜적이 왜선 60여척으로 전라도 달량진에 쳐들어오자 장흥부사로 절도사 원적, 영암군수 이덕견과 더불어 달량진을 구원하러 갔으나 왜적이 거짓으로 도망하였다. 왜적이
한용구 / 韓用龜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7∼1828). 장원으로 급제하고, 1779년 문신전강에서 장원으로 뽑혔다. 이조참의 재직 중 왕을 모독하였다 하여 유배되었고 복직 후 형조참판·대사헌·평안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거듭 사직하려 했으나 거절되었고, 영의정을 거쳐 효의왕후의 장례
한용운 / 韓龍雲 [종교·철학/불교]
항일기의 승려·시인·독립운동가(1879∼1944). 호는 만해(萬海)·만해(卍海). 1919년 3.1독립운동 때 백용성 등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참여하였다. 1926년 민족의 독립에 대한 신념과 희망을 사랑의 노래한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였다. 1927년 항
한용화 / 韓用和 [종교·철학/유학]
1732년(영조 8)∼1799년(정조 23). 조선 후기 문신. 조부는 한현모이다. 부친 한후유와 모친 민익수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한용정‧한용예이다. 부인은 김치만의 딸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에서 진사에 합격, 이후 음보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
한운용 / 韓雲用 [역사/근대사]
1895-1921.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정평 출생. 일명 운룡(雲龍)·자룡(子龍). 중국 저장성 항저우(浙江省杭州)에서 체육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연해주로 건너가 대한독립단결사대를 조직, 일본군에 항전하였다. 이듬해 일본군이 대거 만주로 출병하여
한원빈 / 韓元彬 [역사/근대사]
1905-1986.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30년 천도교인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농민운동단체인 조선농민사(朝鮮農民社)에 가입하여 알선부장 겸 조사출판부원으로 이 단체의 기관지인 《농민》을 편찬, 간행하였다. 1932년 이 단체의 상무로 근무하면서 《농민》
한원진 / 韓元震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682∼1751). 호락논쟁에서 인물성이론을 주장하였다. 이이·송시열·권상하로 이어지는 학통을 계승하여 기발이승일도설을 지지하였고, 《주역》을 중심으로 하는 역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저서에 《남당집》《주자언론동이고》 등이 있다.
한유기 / 韓有箕 [종교·철학/유학]
1655년(효종 6)∼1737년(영조 13). 조선 후기 유학자. 한사개 후손, 고조는 한천뢰, 증조는 한효참, 조부는 한필적이다. 부친 한여익과 모친 성숙의 딸 사이에서 6남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형 한성기·한창기와 동생 한종기·한서기·한사기가 있다. 부인은 박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