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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후기
성이호 / 成彛鎬 [역사/조선시대사]
1817년(순조 17)∼1895년(고종 32). 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돈오(惇五), 본관은 창녕(昌寧),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1852년(철종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72년에는 사은부사(謝恩副使)로, 1883년에는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
성재서당 / 盛才書堂 [교육/교육]
대구광역시 중구 미대동에 있는 서당.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9호. 이 곳은 채선견(蔡先見)이 정자(亭子)를 짓고 만년에 학문을 강론(講論)하던 곳이다. 그 뒤 후손들이 선생의 높은 덕행을 널리 기리고자 새로 수축하고 그 이름을 성재서당이라 개칭하였다. 채선견은 채응린(蔡
성재숭 / 成載崇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후기의 학자. 우계 성혼의 후손이다. 어버지는 광묵, 어머니는 박회원의 딸이다. 18세기 중반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성재숭은 파주 지역의 창녕 성씨 종중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문집에 종중을 대신하여 보낸 편지들이 상당수 존재하며
성절사 / 聖節使 [정치·법제/외교]
조선시대 명나라 또는 청나라의 황제·황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던 사절 또는 그 사신. 이 정례 사행은 1645년(인조 23) 부터 서로간의 편의를 보아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정조에 보내기로 하였다. 1723년(경종 3)에 다시 강조되어 그 뒤로는 동시에 시
성주중흥가 / 聖主中興歌 [문학/고전시가]
1623년정훈(鄭勳)이 지은 가사. 지은이가 61세 때 지은 작품으로 그의 가사 5편 중 유일하게 지은 연대가 분명한 작품이다. 작자의 문집 『수남방옹유고(水南放翁遺稿)』에 전한다. 내용은 제1단 서(序) 12구에서는 반정의 감격을, 제2단 8구에서는 인조에 대한 찬사
성진령 / 成震齡 [종교·철학/유학]
1682년(숙종 8)∼1739년(영조 15). 조선 후기 문신·유학자. 창녕부원군 성여완 후손, 증조는 성하창, 조부는 성초일, 부친은 성인동이다. 형으로 성석령·성현령이 있다. 1711년(숙종 37) 식년시 진사 2등 8위로 합격하고, 1713년(숙종 39) 증광시
성천서원 / 星川書院 [종교·철학/유학]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 있었던 서원. 1703년(숙종 2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준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
성풍류 / 醒風流 [문학/고전산문]
중국 소설의 「성풍류(醒風流)」의 번역소설. 이 소설의 구성은 치밀하지 못한 편이다. 장서각본 「성풍류」는 장회를 나누지 않고 편의상 일곱 권으로 나누었으며, 각 권의 서두와 말미에 있는 시와 삽입시의 대부분을 삭제하였다. 또 본문 가운데 제9회(장서각본 3권내)에서
성한 / 成僩 [종교·철학/유학]
1664(현종 5)∼1719(숙종 45).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대팽이다. 1689년(숙종 15) 원자 위호 문제로 송시열 등 서인이 조정에서 쫓겨나고 인현왕후가 폐출되자 그는 이를 개탄하여 상소하려 하였으나, 장인 허격이 극력 저지하여 그만두었다. 전설사별제,
성해응 / 成海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760∼1839). 1783년(정조 7)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88년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되었다. 뒤에 내각에 있으면서 북학파 인사들과 교유하였으며 각종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다. 관직은 금정찰방·음성현감 등을 지냈다. 문집으로《연경재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