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한성우 / 韓聖佑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1710(숙종 36). 조선 후기의 문신. 응인 증손, 할아버지는 덕급, 아버지는 수원, 어머니는 이영선의 딸이다. 대사간, 판결사, 개성유수,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한성준 / 韓成俊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고수·민속무용가(1875∼1941). 창극의 장단으로 평타령·중모리·진양조·엇모리·휘모리 등에 특히 능했으며 명창·명무로도 이름을 떨쳤다. 무용에도 뛰어나 민속무용에 전념하여 흩어져 있던 무용의 체계를 세워 승무·학무·태평무 등의 여러 무용을 무대화시켰다.
한성태 / 韓成泰 [예술·체육/국악]
1890-1931년. 일제강점기의 판소리 명창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운산리(雲山里)에서 태어났으나, 광주(光州)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한덕만(韓德萬)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배웠으며, 5년
한수 / 韓脩 [종교·철학/유학]
1333(충숙왕 복위 2)∼1384(우왕 10). 고려 후기의 문신. 악의 손자이다. 1347년(충목왕 3) 15세의 나이로 과거에 합격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전리좌랑, 성균사예, 비서소감, 병부시랑, 국자감좨주 등을 역임하였다. 이색과는 일찍부터 교분이 깊었고,
한수동 / 韓壽同 [예술·체육/국악]
1895년∼1940년. 가야금산조 및 풍류의 명인. 전라남도 해남(海南) 출생. 대금·시나위·가야금의 명인이던 숙구(淑求)의 아들이다. 화순군 동복(同福)에서 살았다. 아버지에게서 가야금·풍류 및 산조를 배워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이름이 났고 역대 가야금산조 명
한순 / 韓楯 [종교·철학/유학]
1555(명종 10)∼1592(선조25).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극심이다. 황정길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선전관·평양판관 등을 거쳐 1590년 남평현감에 임명되었다.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을 구제하며 군비에 충실하여 인근
한시대 / 韓始大 [역사/근대사]
미상∼198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황해도 해주(海州)이다. 1902년(광무 6) 캘리포니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신민회에 가입하여 위원장을 역임하며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일에 힘썼다. 1937년 미주 지역 애국단 대표로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의에 참
한양리 / 韓良履 [역사/근대사]
1883-1946. 한말의 의병. 자는 여경(女敬), 호는 석초(石樵). 경상북도 문경 출신. 1906년부터 1908년에 걸쳐 이강년(李康埏)의 의병부대에서 종사관(從事官)으로 의병소집활동을 하였으며, 원주·단양·제천·갈평·안동·내성·재산, 경기도 관악산 등의 전투에
한양순 / 韓良順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서울올림픽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위원,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 학자. 서울 출생. 1946년에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이화여대학교를 졸업한 뒤 진명여자고등학교 체육교사를 시작으로 수도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등을 거쳐
한여유 / 韓汝愈 [종교·철학/유학]
1642년(인조 20)∼1709년(숙종 35). 조선 중기의 문인. 한예의 후손이다. 송시열에게 학문을 배워 경학에 능통했다. 저술로「선후천도설」, 「건곤변」, 「삼십육궁해」, 「왕노재조화론설」, 「중용혹문설」,「대학혈구장론」,「주례직방씨의」등이 있다. 저서로『둔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