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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한동인 / 韓東人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서울발레단 단장, 조선무용예술협회 발레부 위원 등을 역임한 무용가. 강원도 고성군 고성면 동리에서 부친 한기태와 모친 김인해의 사이의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고성 회양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의 배화중학교에 입학했다. 부친은 그가 의사의 길을 걸어갈
한백겸 / 韓百謙 [종교·철학/유학]
1552(명종 7)∼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문신. 승원 증손, 할아버지는 여필, 아버지는 효윤, 어머니는 신건의 딸이다. 민순의 문인이다. 판결사, 호조참의, 강원도안무사, 파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저서로『구암집』이 있다.
한백흥 / 韓伯興 [역사/근대사]
1897-1950.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출신지는 제주도 제주시(濟州市) 조천읍(朝天邑) 조천리(朝天里)이다. 1919년 3월 21일 조천리 만세운동은 서울에서 3·1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던 김장환(金章煥)이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조천읍(朝
한병기 / 韓炳基 [역사/근대사]
미상-1919년 8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15일 의병장 출신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조직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참여하였다.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소재한 대한독립단이 본부·서간도·국내 각 지부에 재무
한봉근 / 韓鳳根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호는 금산(錦山). 경상남도 밀양 출신. 정권이 일본에게 침탈당하고 일제의 무단정치가 극악해짐에 따라 만주의 길림성(吉林省)으로 망명하여 김원봉(金元鳳)·황상규(黃尙奎)·이종암(李鍾岩) 등을 만나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의, 의열단(義烈
한봉석 / 韓鳳錫 [역사/근대사]
1893-1942. 독립운동가. 경기도 김포 출신. 1919년 조선총독부의 토목기사로 근무하고 있던 중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으며, 그뒤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에 군자금모금의 사명을 띠고 귀국하여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대구복심
한봉수 / 韓鳳洙 [역사/근대사]
1872-1970. 한말의 의병장. 일명 봉서(鳳瑞)·봉용(鳳用)·봉룡(鳳龍). 충청북도 청주 출신. 1907년 8월 의병장 김규환(金奎煥)을 만나 감화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의병에 가담하게 되었다. 청주 세교장(細橋場)에서 기의하여 4년 6개월 동안 33전 1패
한봉인 / 韓鳳仁 [역사/근대사]
1898년∼1968.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밀양 출생. 1919년 만주 길림성(吉林省) 길림(吉林)에서 김원봉(金元鳳)·이성우(李成宇)·서상락(徐相洛)·한봉근(韓鳳根) 등과 함께 의열단(義烈團)을 조직, 독립운동을 위하여 무력으로 투쟁할 것을 모의하고 군자금을 조달하기
한사직 / 韓師直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5∼1778). 1754년 급제하여 60세의 나이로 보덕이 되었고, 이어 지평·정언·헌납·장령을 지냈다. 강릉부사 재직 중 1756년 대기근이 들자 진휼에 힘썼다. 이후 대사관, 대사헌, 한성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80세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한산두 / 韓山斗 [종교·철학/유학]
1556년(명종 11)∼1627년(인조 5). 조선 중기 유생‧의병. 한서봉 후손, 고조는 한태, 증조는 한영년, 조부는 한필이다. 부친 한일취와 모친 진황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윤복의 딸이다. 교유한 인물로 이개립‧전이성 등이 있다. 아들로 한원진‧한형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