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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최병수 / 崔炳秀 [역사/근대사]
1876-1919.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아산 출신.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고, 선장면·신창면·도고면 등 3개 면민의 연합만세운동 총책임자로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4일 200여명의 만세시위군중이 모인 선장 장
최병인 / 崔炳寅 [종교·철학/유학]
1869년(고종 6)∼1917년. 조선 말기 유학자. 증조부는 최승우, 조부는 최운황, 아버지 최면식과 어머니 진성이씨 사이에서 네 명의 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불행히도 어려서부터 병약해서 벼슬을 하지는 못하였으나, 고향에서 학문에 열중하였다. 효행이 뛰어났으
최병일 / 崔秉一 [역사/근대사]
1883-193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치순(崔治順)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安城)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奭)·최은식(崔殷植)·홍
최병헌 / 崔炳憲 [종교·철학/개신교]
1858-1927년. 감리교목사. 한국적 신학 형성의 선구자. 호는 탁사(濯斯). 충청북도 제천 출생.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고 과거를 준비하던 중 《영환지략 瀛環志略》 등의 서적을 읽고 서양문화의 발달상과 그 정신적 지주가 기독교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부패상에
최병호 / 崔炳鎬 [역사/근대사]
미상-1924. 독립운동가. 강원도 출신. 부모를 따라 어렸을 때 만주로 건너가 통화(通化)에서 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자 중동선(中東線) 일대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항일무장단체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헌병
최봉설 / 崔鳳卨 [역사/근대사]
1897-1973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이붕(以鵬)이고, 다른 이름은 최계립(崔溪立)이다. 출생지는 중국 연길현 지인향 와룡동(현 연길시 소관향 민흥촌)이다. 부인은 김하규(金河奎)의 딸 김신희(金信姬)이다. 1920년 일제의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수송중
최봉원 / 崔鳳元 [역사/근대사]
1913-200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동광(崔東光)이다. 본적은 평안북도 신의주(新義州)이다. 형은 최봉록(崔鳳錄)이다. 돈을 벌 목적으로 형과 함께 중국의 화북(華北)으로 가서 행상을 하던 중에 제남(濟南) 근처에서 1938년 4
최봉직 / 崔奉稷 [역사/근대사]
1896-1961. 독립운동가. 황해도 벽성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해주에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1920년 1월 유하현 삼원보에 있는 군사학교를 이수하고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담하였다.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국내에 잠입, 1920년
최봉환 / 崔鳳煥 [역사/근대사]
1868-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순천 출신. 1910년 1월 19일 평안남도 순천교회 장로로 활동하던 중, ‘시장세반대투쟁(市場稅反對鬪爭, 일명 百一稅事件)’을 주도하여 3,000여명의 농민·상인들을 동원하여 시위 항쟁하고, 순천 세무주사 노자와(野澤辰三郞) 등
최부 / 崔溥 [종교·철학/유학]
1454(단종 2)∼1504(연산군 10).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택, 김종직의 문인이다. 1478년(성종 9) 성균관에 들어가 신종호와 더불어 문명을 떨쳤고, 김굉필 등 동학들과 정분을 두터이 하였다. 1482년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저작,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