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문헌 총 4,640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문헌
영언선 / 永言選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시조인 한유신이 김유기의 『영언선』을 고쳐서 편찬한 가집. 『영언선』에는 한유신의 글을 포함하여 9편의 서·발문과 한유신의 작품 11수의 가곡이 실려 있다. 『영언선』의 편찬 경위나 한유신 자신의 노래와 노래생활에 대한 비평적 언급들이 담긴 서·발문들과 한
영왕자내수책홀기 / 英王自內受冊笏記 [정치·법제]
영친왕 홀기. 영왕(英王) 곧 영친왕이 1900년(고종 40) 8월 17일 중화전(中和殿)에서 책문을 받는 의식 절차를 기록한 홀기이다.
영정신연도남산연유치주문 / 影幀神輦到南山緣由馳奏文 [정치·법제]
1900년(광무 4) 3월 13일에 안변에서 남산의 숙소에까지 영정을 무사히 모셔왔음을 의정부 의정과 장례원 경이 고종에게 아뢴 주문. 영정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미상, 옮긴 목적은 그것을 모사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의정부 의정이 영정모사도감 도제조의 직무를
영정신연도회양군연유치주문 / 影幀神輦到淮陽郡緣由馳奏文 [정치·법제]
1900년(광무 4) 3월 15일 고산참에서 진발한 영정이 회양군의 숙소에 도착하였음을 의정부의정과 장례원경이 고종에게 아뢴 주문. 영정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미상이며, 옮긴 목적은 그것을 모사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의정부 의정이 영정모사도감도제조의 직무를
영정신연자덕원부전진연유치주문 / 影幀神輦自德源府前進緣由馳奏文 [정치·법제]
1900년(광무 4) 3월 13일 덕원부의 숙소에서 영정을 받을어 모시고 전진하였음을 의정부 의정과 장례원경이 고종에게 아뢴 주문. 영정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미상, 옮긴 목적은 그것을 모사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의정부의정이 영정모사도감도제조의 직무를 맡고
영조가상존호망단 / 英祖加上尊號望單 [정치·법제]
재위중인 영조에게 존호를 가상하기 위해 1752년(영조 28) 2월 29일 빈청에서 영조의 윤허를 바라며 의정해 올린 가상존호 망단. 의정한 존호는 '장의홍윤광인돈희(章義弘倫光仁敦禧)'의 여덟 글자이며, 이 여덟 글자를 단망의 형태로 써 올려서 영조의 재가를 받았다.
영조사묘전배록 / 英祖私廟展拜錄 [정치·법제]
영조가 1726년(영조 2)부터 1733년(영조 9)까지 자신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소령묘에 참배한 일시, 수행자 등을 직접 기록한 어필 문서. 이 문서는 1733년 3월 17일 정오에 작성되었으며, 글 중의 '대묘'는 숙빈최씨의 사당을 '소묘'는 정빈이씨의 사당을 가리
영친왕영지 / 英親王令旨 [정치·법제]
1901년(광무 5) 2월 영친왕이 경부철도회사의 주식 500주를 소유할 일로 감독 민영철(閔泳喆)로 하여금 대리로 대변하게 하는 문서. 당시 고종황제는 2,000주, 황태자인 순종은 1,000주, 영친왕은 500주를 각각 매수하였다. 1898년 9월 8일 한일양국의
영친왕이은황태자책봉사양상소문 / 英親王李垠皇太子冊封辭讓上疏文 [정치·법제]
1907년(융희 1) 8월 7일 경 순종황제의 이복 아우인 영친왕 이은(李垠)이 황태자의 책봉을 받고 이를 사양하여 올린 상소문. 이 상소문에 대해 순종은 '내가 질병으로 후사를 두기가 어려우며, 조종조의 고사도 있으니 사양하지 말라'는 취지의 비답을 내렸다.
영친왕자사 / 英親王字辭 [정치·법제]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 태어난 아들 영친왕(英親王)에게 '광천'이라는 자를 의정하여 지어준 데 대한 자사(字辭) 단자. 《고종실록》에 의하면, 1907년 2월 27일에 영친왕의 정자 망단을 올려 '광천'으로 정했다. 영친왕 이은(李垠)은 1900년 8월에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