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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문헌
영남위유어사봉서 / 嶺南慰諭御使封書 [정치·법제]
1794년(정조 18). 정조가 이익운을 영남 위유어사로 보내면서 내려준 봉서. 이 봉서에는 이익운으로 하여금 위유하는 윤음을 반포하게 함과 동시에 암행어사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질고와 수령들의 근만 등을 염찰하는 등 14개 조목으로 수행해야할 임무를 열거하고 있다.
영릉지문 / 寧陵誌文 [언론·출판]
저자 송시열(1607-1689). 필사본. 책의 구성은 1책 40장 이다. 이 책은 <영릉지문>, <남초가>, <수락산의게 고한 제문>, <궁촌묘디명>, <유명됴션국수녹태우행니조판셔겸판의금부사디경연사홍문관대졔학예문관대졔학지춘추관셩균관사셰졔좌빈격오위도총부도총관 옥오재송공
영물근체시 / 詠物近體詩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위항시인 유재건이 사물을 제재로 지은 영물시만을 모아 편찬한 시집. 32권 11책. 필사본.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근체시 가운데 새·꽃·달·고기 등 사물을 제재로 지은 영물시만을 제재별로 409문으로 분류한 선시집이다. 근체시는 당대에 와서 확립
영빈이씨증시교문 / 暎嬪李氏贈諡敎文 [정치·법제]
1765년(영조 41) 7월 11일.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에게 의열(義烈)이라는 시호를 내린 교문. 《영조실록》106권에 실려 있다. 이씨는 1730년(영조 6) 영빈으로 봉해졌으며, 영조의 깊은 총애를 받았다. 영조가 교문을 직접 지어서 본궁에 거둥하여 시호를
영빈이씨증시교지 / 暎賓李氏贈諡敎旨 [정치·법제]
1765년(영조 41) 7월 11일.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이씨에게 의열빈(義烈嬪)이라는 시호를 내린 교지. 이 교지는 붉은 종이에 씌어 있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영조실록》196권에 실려 있다. 영조가 이 교지와 제문을 직접 지어서 본궁에 거동하여 시호를 내리는 예를
영빈행장 / 暎嬪行狀 [역사/조선시대사]
정조가 직접 지은 할머니 영빈이씨(暎嬪李氏)의 행장. 이 글을 ≪홍재전서≫에서는 찾을 수 없는데, 영조를 "금상"이라고 칭하는 것으로 보아 세손 시절에 지은 듯하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영빈이 영조의 빈으로서 지켰던 부덕(婦德)을 매우 세세히 보여준다. 그 중에서
영서집 / 潁西集 [종교·철학/유학]
전명용의 문집. 목활자본, 서: 황찬주(1921), 이세연(1921), 후지: 전종석(1921), 4권 2책. 권1과 권2에는 모두 400수 시 수록. 권3에는 3편의 전문과 7편의 편지와 서문 6편‧ 기문 3편‧ 발문 3편‧ 설 3편‧ 상량문 3편‧ 제문 6편 ‧잡저
영수합고 / 令壽閤稿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여류시인 영수합 서씨의 시 「기장아부연행중」·「차귀거래사」등을 수록하여 1824년에 간행한 시집. 1권. 목활자본. 작가의 남편 홍인모(洪仁謨)의 유고집인 『족수당집(足睡堂集)』 6권에 부록으로 편록된 것이다. 영수합 서씨가 죽은 이듬해 아들들이 편찬, 간행하
영양현호적대장 / 英陽縣戶籍大帳 [사회/촌락]
1792년(정조 16)에 조사, 작성된 경상도 영양현의 호적대장. 1책. 필사본. 크기는 세로 55㎝, 가로 38㎝, 분량은 250매. 완본(完本)이나 마지막 부분(北面의 호적 대부분)이 많이 낙장되어 있다. 장서각 도서에 있는데, 표지에는 무주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
영언 / 永言 [문학/고전시가]
19세기 초·중반 필사지(筆寫地)와 필사자 미상의 가곡집. 초중화엽(初中和葉)이라는 악곡의 이름을 시작으로 가곡 516수를 수록하고 있으며, 국한문을 혼용하여 정연하게 필사한 가곡집이다. 서문이나 발문이 붙어 있지 않고 편찬자나 필사자도 표기되어 있지 않아편찬이나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