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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최경식 / 崔景植 [예술·체육/국악]

    1876-1949년. 한말과 민족항일기에 활약한 가곡·가사·시조의 명창. 현재의 서울 마포구 공덕동 출신으로 일찍부터 소리를 좋아하여 청파사계(靑坡四契)축의 소리꾼 조기준(曺基俊)으로부터 사설지름시조와 가사를 배웠고, 박춘경(朴春景)으로부터 잡가를 배워 가사며 시조·잡

  • 최경창 / 崔慶昌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고죽유고』를 저술한 시인. 최충(崔冲)의 18대손이며 최자(崔滋)의 13대손이다. 아버지는 최수인(崔守仁)이다. 박순(朴淳)의 문인이다. 최경창은 백광훈(白光勳)·이후백(李後白)과 함께 양응정(梁應鼎)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1555년(명종 10) 17세 때에

  • 최경호 / 崔京鎬 [역사/근대사]

    1894-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종성군(鐘城郡)이다. 1920년 독립운동가 최조륙(崔助陸)의 경호원이 되어 북간도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7월 일본관헌의 밀정을 데려오라는 경호부장 다른 이명화(李明花)의 명을 받고, 김승훈(金承勳)의 장

  • 최경회 / 崔慶會 [종교·철학/유학]

    1532(중종 27)∼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의병장. 충 후손, 혼 증손, 할아버지는 윤범, 아버지는 천부이다. 경장의 형이다. 양응정·기대승에게 수학하였으며,1567년(선조 즉위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영해군수, 경상우병사 등을 역임하였다. 화

  • 최경흠 / 崔景欽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풍요삼선』, 『소대풍요』 등을 저술한 시인. 종래의 여항시사(閭巷詩社)의 전통을 이어 1853년(헌종 1) 유재건·조희룡(趙熙龍)·이경민 등 당시의 저명한 여항시인들과 함께 직하시사(稷下詩社)를 결성해 여항문학의 말기를 장식하였다. 여항시인으로서의 그의 업적

  • 최계 / 崔誡 [종교·철학/유학]

    1567(명종 22)∼1622(광해군 14).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종옥이다. 1591년(선조 24) 무과에 급제하여 만경현령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전공을 세웠다. 광해군 때에는 대북파의 전횡이 심하여지자 벼슬을 버리

  • 최관용 / 崔寬用 [역사/근대사]

    1899-1946. 독립운동가. 황해도 연백 출신. 1919년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하여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지휘하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에 가입하였고, 1920년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에 대한독립군 제1대대 제3중대 특무정교(特務正校)로 참전하여 많은 전공을

  • 최광 / 崔廣 [역사/근대사]

    1882-191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용덕면(龍德面)이다. 1907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경제학전문과(經濟學專門科)를 졸업하였다. 1908년(융희 2) 영남지방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박정동(朴晶東)·이하영(李夏榮) 등 경

  • 최광벽 / 崔光璧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8∼1791). 세자시강원 설서가 되어 왕세자를 가르쳤다. 나경언이 왕세자의 비행을 상소하여, 영조가 왕세자를 죽게 한 사건이 일어나자 최광벽은 관직을 떠나 향리로 돌아갔다. 복직되었다가 이후 향리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했다.

  • 최규서 / 崔奎瑞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735(영조 11). 조선 후기의 문신. 경창 현손, 집 증손, 할아버지는 진해, 아버지는 석영이다. 1680년(숙종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이 때 서인의 나문에서 뛰어난 재주로 시명을 얻어 언관이 되었다.대제학, 우의정,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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