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권상유 / 權尙游 [종교·철학/유학]
1656(효종 7)∼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증영의정 권격, 어머니는 함평이씨로 돈녕부도정 이초로의 딸이다. 대사간, 도승지,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성리설에 밝았으며, 특히『논어』와『주역』에 관통하였다.
권상익 / 權相翊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63-1935). 을사조약에 격분하여 만국공관(萬國公館)에 보낼 호소문을 작성하였고, 3·1운동 당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운동에 참가하였다. 1925년 독립군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을 제공하고 적극 지원하였다. 문집으로 《성재집》 2
권상일 / 權相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679∼1759). 1710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 뒤 저작·전적·예조좌랑·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1727년 만경현령이 되고, 이듬해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황을 사숙하며 이황이 수정하기 전
권상중 / 權相中 [역사/근대사]
1882-1929년. 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안동. 본명은 상중(尙中), 아명은 석출(石出). 자는 윤집(閏集). 경상북도 청송 출신. 아버지는 복규(福奎),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체결로 인하여 일본에 의한 국권침탈이 자행되자 의병장 김소라
권상하 / 權尙夏 [종교·철학/유학]
1641-1721.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 송시열, 송준길의 문인이다. 1660년 진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송시열이 귀양에서 돌아오자 화양으로 가서 이후 10년 동안 주희와 정이의 저술을 적정하였다. 인물
권석도 / 權錫燾 [역사/근대사]
1880-1946년. 한말의 의병장·독립운동가. 일명 윤일이(尹一二) 또는 권명구(權命九). 경상남도 함양 출신. 군대해산 직후인 1907년 8월에 기우만(奇宇萬)·고광순(高光洵)·김동신(金東臣) 등이 회합하여 의병을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동지를 규합할 때 김동신의
권석원 / 權錫元 [종교·철학/유학]
1798년(정조 22)∼1871년(고종 8). 조선 후기 학자·문인. 부친은 권문혁이다. 어려서 총명하여 스스로 독서할 줄 알고 일찍이 약관이 못되어 과업에 뜻을 두었으나 여러 차례 낙방하자, 과업에 뜻을 버리고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문하에 심서 김영하를 두었다. 유
권석호 / 權錫虎 [종교·철학/유학]
권석호(1897∼1961). 권문해의 후손이다. 고조는 권진락, 증조는 권효상인데, 후사가없어 백씨도상의 둘째 아들 분환을 후사로 삼았다. 분환 역시 후사가 없어 종자형원을 후사로 삼았으니,바로 공의 선고이다. 어머니는 평산신씨이다. 기미(1919) 4월 2일에 용문면
권성 / 權晟 [종교·철학/유학]
1653(효종 4)∼1730(영조 6). 조선 후기의 문신. 권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전, 아버지는 권양, 어머니는 한극겸의 딸이다. 현감 권현에게 입양되었다. 1687년(숙종 13) 알성문과에 장원급제, 지평·장령·집의·헌납·사간 등을 지냈다. 1703년조광조·
권성익 / 權聖翊 [종교·철학/유학]
1735년(영조 11)∼1821년(순조 21). 조선 후기의 학자. 과거에 여러 번 응시하였으나 끝내 등과 못하였다. 향리에 있으면서 천명설과 성리설을 깊이 연구하여〈성지위천명〉·〈성리설변〉등을 지었는데,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중심으로 하여 그 변화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