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총 672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박은식 / 朴殷植 [역사/근대사]
1859-1925. 한말·일제강점기의 학자·언론인·독립운동가. 성리학과 위정척사사상에서 개화사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1898년에 독립협회에 가입해 회원이 되었다. 그 해 11월의 지식인들이 중심이 된 만민공동회에서는 문교부장급 간부로 활동하였다. 신민회의 원로회원으
방정환 / 方定煥 [교육/교육]
항일기의 아동문학가(1899∼1931). 1920년 일본 동양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하였다.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고, 1923년 3월 아동잡지《어린이》를 창간하였다. 1928년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서일 / 徐一 [종교·철학/대종교]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종교가(1881-1921). 호는 백포(白圃). 1911년 중광단을 조직하였고, 1919년 서로군정서를 개편하여 총재에 취임하였다. 1920년에는 청산리전투를 이끌었다. 대종교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저서로는 <삼일신고강의>, <회삼경> 등이
서재만 / 徐在萬 [역사/근대사]
1904년(광무 8) 9월 23일∼1984년 4월 19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청산면(靑山面)이다. 1923년 완도군 청산면(靑山面) 모도리(茅島里) 대모도(大茅島)에서 마을의 개량서당(改良書堂)을 후원하기 위한 배달청년회(倍達靑
서재필 / 徐載弼 [역사/근대사]
현대의 정치가·독립운동가(1864-1951). 호는 송재(松齋). 1882년 3월 별시 문과 병과에 합격하여 교서관의 부정자에 임명되었다. 1884년 12월 김옥균·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18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참판 겸 정령관이 되었으나 정변의 실패로 일본을
손병희 / 孫秉熙 [종교·철학/천도교]
항일기의 동학인·독립운동가·교육사업가(1861-1922). 호는 소소거사(笑笑居士)·의암(義菴). 1894년 동학 북접통령이 되어 논산으로 나아가 전봉준과 합세하였다. 그러나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여,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으로 피신하였다. 1897년 12월 제3세 교
안병찬 / 安秉瓚 [역사/근대사]
1854-1921.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05년 을사조약 체결시 법부(法部) 주사로 을사오적을 죽일 것과 나라를 바로잡을 것을 국왕에게 상소하였으나 오히려 경찰에 구속되었다. 1909년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의 중심인물 이용구(
안중근 / 安重根 [역사/근대사]
1879-1910. 구한말 교육가·의병장·의사(義士)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이 체결되자 북간도로 망명하였다. 1908년 6월 특파독립대장 겸 아령지구군사령관이 되어 함경북도 홍의동의 일본군과 경흥의 일본군 정찰대를 격파했으나, 회령전투에서는 5,000여 명의 적을
안창호 / 安昌浩 [교육/교육]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자(1878-1938).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 관서지부조직을 맡았고, 1898년 이상재·윤치호·이승만 등과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직을 맡았다. 1932년 4월 윤봉길의 상해 훙커우공원 의
양재홍 / 梁在鴻 [역사/근대사]
1881-미상.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화순 출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1917년 김교락(金敎洛)·정동근(鄭東根)·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동지적 결합을 이룬 뒤, 나주·함평·화순·순천 등 주로 전라남도 지역에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