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조해 / 趙楷 [종교·철학/유학]
1639(인조 17)∼1699(숙종 25).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봉원, 어머니는 정시혁의 딸이다. 서인이다. 1681년(숙종 7) 천거로 공릉참봉, 경안도찰방, 예빈시직장, 의금부도사,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조헌 / 趙憲 [종교·철학/유학]
1544(중종 39)∼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유학자·의병장. 황 증손, 할아버지는 세우, 아버지는 응지이다. 어머니는 차순달의 딸이다. 이이·성혼의 문인이다. 156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공조좌랑, 보은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604년 선
조현명 / 趙顯命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0∼1752). 이인좌의 난이 진압된 뒤 분무공신 3등에 책록되고, 풍원군에 봉해졌으며, 이후 도승지·경상도관찰사·공조참판·부제학, 이조·병조·호조판서 등의 요직을 거쳐 우의정·좌의정·영의정에 이르렀다. 영조의 탕평책을 지지하였다. 저서로는《
조형 / 趙珩 [종교·철학/유학]
1606(선조 39)∼1679(숙종5). 조선 후기의 문신. 세찬 증손, 할아버지는 기, 아버지는 희보이다. 1626년(인조 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나 파방, 163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대교를 거쳐 사국으로 옮겼다. 좌참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
조형균 / 趙衡均 [교육/교육]
1873-1948년.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정주 출신. 1892년(고종 29) 정주에 교회를 세우고 신문화운동을 통하여 애국사상을 고취하였고, 1904년 이승훈(李昇薰)과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설립,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또, 남녀청년단을 조직하고, 식
조형도 / 趙亨道 [역사/조선시대사]
1567(명종 22)∼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무신. 생육신 여 5대손이다. 아버지는 지이다. 큰아버지 우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오운의 딸이다. 1583년(선조 16) 첨지 민추에게 수학했다. 1587년 정구를 사사한 뒤 3년 간 향시에 연이어 장원하였다
조형보 / 趙衡輔 [정치·법제/법제·행정]
1659년(효종 10)∼1697년(숙종 23). 조선 후기 학자. 본관은 풍양이다. 홍문관전한 조종경(趙宗敬)의 후손으로, 증조는 현감 풍옥헌(風玉軒) 조수륜(趙守倫)이고, 조부는 창강 정속(鄭涑)이다. 부친 현령 매창(梅窓) 정지운(鄭之耘)과 모친 승지 정면(鄭勔)
조호익 / 曺好益 [종교·철학/유학]
1545(인종 1)∼1609(광해군 1).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치우 증손, 할아버지는 효연, 아버지는 윤신이다. 어머니는 장중우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저서로 『지산집』·『심경질의고오』·『가례고증』·『주역석해』 ·『역상추설』·『논위학지요』·『이기유석등변』·『
조황 / 趙晃 [역사/근대사]
1882-1934. 항일독립운동가. 경기도 포천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부터 국내에서 의열단 활동을 하였다. 1923년 3월 황옥경부폭탄투척의거(黃鈺警部爆彈投擲義擧)에 가담하여 김시현(金始顯) 등과 더불어 붙잡혔다. 같은해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 합의부에서
조훈 / 趙勳 [역사/근대사]
1886-1938. 독립운동가. 일명 덕묵(德默). 함경남도 단천 출신. 1910년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19년 장백현(長白縣) 17도구(道溝)에서 이태걸(李泰杰)·김찬(金燦) 등과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을 조직, 외교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