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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조중진 / 趙重鎭 [종교·철학/유학]
1732년(영조 8)~미상. 조선 후기 문신. 부친은 조재민, 동생은 조경진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 생원에 3등 18위로 합격하였다. 감조관‧평강현감‧직산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조중회 / 趙重晦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1∼1782). 정언으로 왕의 사묘 참례와 사행의 폐를 논박해 삭탈되었고, 탕평에 반대한 윤급을 변호하여 파직됐으나, 곧 기용돼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사도세자 죽음의 부당함을 극간하여 무장에 유배되었고, 홍국영 사후 이조판서에 임명되나
조지겸 / 趙持謙 [종교·철학/유학]
1639(인조 17)∼1685(숙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 영중 증손, 할아버지는 익, 아버지는 복양. 어머니는 이경용의 딸이다. 1670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교·설서·이조좌랑·사간·응교·승지·대사성·부제학·형조참의, 고성군수, 경상도관찰사 등을 두
조지빈 / 趙趾彬 [종교·철학/유학]
1691년(숙종 17)∼1730년(영조 6).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조계원, 조부는 조가석이다. 부친 조태억과 모친 심구서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이조이다. 1718년(숙종 44)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관직 초기에 홍문록 15인 중 한 사람으로 뽑혔
조진관 / 趙鎭寬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9∼1808). 조엄의 아들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홍국영에게 아버지가 무고 당하자 신문고를 치고, 옥중에서 자살을 기도하며 항거하고, 소를 올려 마침내 원을 풀었다. 대사간·병조·이조판서·대사헌이 되었고, 호조판서 때 영동·관서의 재해
조진석 / 趙晉錫 [종교·철학/유학]
1610(광해군 2)∼1654(효종 5). 조선 후기의 문신. 남 증손, 할아버지는 존성, 아버지는 계원, 어머니는 신흠의 딸이다. 신익성의 사위이다. 1640년 창릉참봉을 거친 뒤 전설사별검·사옹원직장·의금부도사를 역임하고 임실현감으로 부임하여 많은 치적을 올렸다.
조진탁 / 曺振鐸 [역사/근대사]
1867-1922.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1919년 대동군 금제면 원장리 장날인 3월 4일을 기하여,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과 함께 강서군 사천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반석면 반육리에 있던 반석교회의 장로로서 1919년 2월 28일 평양에 갔다가
조창룡 / 趙昌龍 [역사/근대사]
1899-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順川)이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입단하였다. 1920년 김진준(金鎭俊)·장필석(張弼錫) 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하여 평안남도 성천(成川)과 황해도 신계(新溪) 등지에서 국내 조직
조철제 / 趙哲濟 [종교·철학/신종교]
1895년(고종 32)∼1958년. 태극도 창시자. 23세 때 강일순의《태극도리》를 읽고 개안영통하였다. 1918년 무극도를 창도, 증산사상을 포교하였다. 그뒤 3년 동안 120여칸의 교당을 짓고 10만의 신도를 가지는 대교단을 이루었다. 1948년에 본부를 부산 보수
조철호 / 趙喆鎬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90∼1941). 1913년 일본육군 중앙유년학교, 사관학교를 졸업. 오산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하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전교생을 지도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31년 김성수의 신원보증으로 입국하여 동아일보사에 근무하는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