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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김보남 / 金寶男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아악수, 아악수장, 아악사 등을 역임한 음악인.무용가. 1926년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李王職雅樂部員養成所) 제3기생으로 입소하여 피리를 전공하였고, 후에 아악수(雅樂手)·아악수장(雅樂手長)·아악사(雅樂師)가 되었다.춤에 소질이 있어 박성재(朴聖在)·김천흥(

  • 김보형 / 金寶炯 [역사/근대사]

    189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군자금모금 등을 맡았다. 1922년 교전 중 두 팔에 관통상을 입고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1927년 동흥농민회에 참여하고, 1928년 고려혁명당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 김복만 / 金福萬 [역사/근대사]

    1907-197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현경면(玄慶面)이다. 광주농업고등학교(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11월 3일 국순엽(鞠淳葉)·김광용(金匡溶)·김창주(金昌柱)·김한필(金漢苾)·문승수(文升洙)·박인생(

  • 김복일 / 金復一 [종교·철학/유학]

    1541(중종 36)∼1591(선조 24). 조선 중기의 문신. 김만근의 증손, 할아버지는 증 좌승지 김예범, 아버지는 생원 김진, 어머니는 민세경의 딸이다. 병마절도사 김성일의 아우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70년(선조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학유·전적을

  • 김복진 / 金復鎭 [예술·체육/조각]

    1901-1940. 조각가. 호는 정관(井觀). 충청북도 청원 출신. 소설가 기진(基鎭)의 형이다. 우리나라 근대조각의 개척자이다. 1920년에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조각을 전공하고 1925년에 졸업했다. 그뒤 서울의 모교인 배재고등보통학교 미술교사, 경성여자상업학

  • 김봉관 / 金鳳官 [역사/근대사]

    1869-1922.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갑산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광복군사령부에 가담하였다. 1922년 6월 홍범도(洪範圖)의 비밀대원으로서 많은 동지들과 함께 갑산경찰서 함정주재소(含井駐在所)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부장 부부를 죽이고 건물을 불태우고, 무

  • 김봉국 / 金鳳國 [역사/근대사]

    1890-1932년. 한말의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선천 출신. 1919년 평안남도 선천군의 천도교 대표로서 독립선언문을 인쇄하여 배포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평양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다. 손병희(孫秉熙)가 죽자 그의 독립운동노선을 계승하기 위하여, 만주에서 이종

  • 김봉규 / 金鳳奎 [역사/근대사]

    1892-1968.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월성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참여하였다. 1920년 송두환(宋斗煥)·최윤동(崔胤東)·이수영(李遂榮)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대구일대를 중심으로, 일반국민으로부터 직장인·부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

  • 김봉률 / 金奉律 [역사/근대사]

    1897-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야면(伽倻面)이다. 해인사(海印寺)에서 학림학생(學林學生)으로 수학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후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강재호(姜在鎬)·기상섭(奇尙燮)·송복만(宋福晩

  • 김봉문 / 金奉文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판소리 명창(1876-1930). 명창 박기홍(朴基洪)에게 판소리를 배워 민족항일기초에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박기홍의 소리제를 이어 동편제 소리의 진수를 발휘했으며, 〈흥보가〉를 잘하였고 특히 ‘박타는 대목’에서 ‘박물가(博物歌)’를 잘 불렀다.

  • 김봉성 / 金鳳性 [역사/근대사]

    1901-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봉성(金鳳成)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서(江西)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동대문구(東大門區) 신설동(新設洞)이다. 민족대표 이승훈(李昇薰)이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펼

  • 김봉수 / 金鳳秀 [역사/근대사]

    1902-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봉수(奉秀). 아버지는 이형(利亨)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 생활이 곤란하여 1918년 만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4년 관전현 화수구(寬甸縣 華樹溝)에서 정의부(正義府)에 가입, 무장항일운동에 전력하였다. 1928년

  • 김봉식 / 金鳳植 [역사/근대사]

    1904-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영변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1924년 대한통의부 독립결사대에 가입하였다. 1925년 일제기관을 파괴하고 일본경찰과 그 앞잡이들을 숙청하였고, 군자금모금 명령을 받고 동지 정문빈(鄭文彬)·김경보(金敬甫)·채무식(蔡武植) 등

  • 김봉원 / 金鳳源 [역사/근대사]

    1896-1945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평안남도 강동(江東) 출신. 1917년 4월 만주 유하현 삼원보(柳河縣 三源堡)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학하였다. 1919년 8월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으로부터 군자금 모금 지령을 받고 부

  • 김봉조 / 金奉祖 [종교·철학/유학]

    1572(선조 5)∼1630(인조 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김대현, 어머니는 이찬금의 딸이다. 유성룡의 문인이다. 1613년(광해군 5)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도시직장에 임명되었으며,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그

  • 김봉학 / 金鳳鶴 [예술·체육/국악]

    1883-1943. 판소리의 명창. 원각사(圓覺社) 주석으로 있던 판소리명창 김창환(金昌煥)의 아들로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판소리를 10여년간 배웠고, 아버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풍채와 더불어 좋은 목과 재질을 타고나서 대명창이 되었다.

  • 김봉한 / 金鳳漢 [역사/근대사]

    미상-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는데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철마별영(鐵馬別營)에 가담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하였다. 김상옥(金尙玉)·김용택(金龍澤)·김세진(金世鎭)·박영

  • 김봉현 / 金鳳鉉 [역사/근대사]

    1885-1924. 독립운동가. 일명 순구(舜九). 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 일대에서 이유석(李裕奭)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외가천리에 있던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천여 명의 만세운동군중과 독립만세를

  • 김봉호 / 金鳳昊 [역사/근대사]

    1895-1982.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일명 김봉빈(金鳳彬)이다. 전라북도 전주(全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4일 박상선(朴尙鮮)·최병태(崔炳台)·김경신(金敬)·김점쇠(金點釗) 등과 전주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3월 14일 3시 경 일본 경찰의 삼

  • 김봉화 / 金奉和 [역사/근대사]

    1882-191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제주도 안덕(安德)에서 태어났다. 1918년 10월 5일 서귀포 법정사(法井寺) 승려 김연일(金蓮日)·강창규(姜昌奎) 등의 주축이 되어 400여 명의 주민이 중문주재소를 습격한 무오법정사항일운동에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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