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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전기
표연말 / 表沿沫 [종교·철학/유학]
1449(세종 31)∼1498(연산군 4).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을충, 아버지는 계, 어머니는 안홍기의 딸이다. 김종직의 문인이다. 김굉필·정여창 등과 함께 문장에 뛰어났다. 조위·김일손 등과 깊은 교유관계를 가졌다. 1472년(성종 3) 식년문과에 병과로
표해록 / 漂海錄 [문학/고전산문]
1488년(성종 19)최부(崔溥)가 지은 표해기행록(漂海紀行錄). 이 작품의 중요한 내용은 풍랑을 만나 표류하면서 배 안에서 미신을 믿는 무식한 아랫것들과 상주(喪主)로서 죄인으로 자처한 지은이와의 많은 갈등, 왜구를 만난 일, 표류하다가 영파부 바닷가에 도착한 뒤에
품앗이 [사회/촌락]
일을 서로 거들어 주어 품을 지고 갚는 교환노동. ‘품아이’·‘품바꾸이’ 등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의 교환형식이라고 이해되고 있으나, 그 어원적인 의미는 ‘품[勞動力]’·‘앗이[受]’에 대한 ‘품’·‘갚음[報]’의 뜻이 내포된 노동력의 호혜적 증답관계(
풍기향교 / 豐基鄕校 [교육/교육]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교촌리에 있는 향교. 조선시대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본래는 금계동 임실마을 서편에 있었으나, 1541년(중종 36) 주세붕(周世鵬)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문묘에 참배한 뒤 그 위치가
풍산 / 豊山 [지리/자연지리]
지명.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신라 경덕왕때 영안(永安)으로 고쳐 예천군(醴泉郡)의 領縣으로 하였는데, 고려 때 풍산현(豊山縣)으로 고쳤으며, 명종 때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안동부(安東府)에 예속시켰다.
풍암서원 / 風巖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예천군에 있었던 서원. 창건연대는 미상이다. 조선시대에 남천한(南天漢)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었다.
피립 / 皮笠 [생활/주생활]
가례 시 의장군이 쓰는 입자. 영조정순왕후가례시의 장군 57명은 홍의와 청의를 입고 피립을 쓰거나 청두건과 홍목대를 하였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를 보면 의장군 중 피립을 쓰지 않고 청두건을 쓰는 사람만 홍목대를 띠는 것을 알 수 있다. 피립을 만드는 피립장이 있
필선 / 弼善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시강원의 정4품 관직. 정원은 1인이다. 독립관직으로 성립되기 전에는 보통 사헌부집의나 사간원사간이 이를 겸임하였다. 1392년(태조 1) 세자관속(世子官屬)을 처음 정하면서 좌우필선 각 1인을 두었고, 세종 때에는 집현전 관원들이 이를 겸직하였다.
필원잡기 / 筆苑雜記 [문학/구비문학]
조선전기 문신·학자 서거정이 역사에 누락된 사실과 조야의 한담을 소재로 서술한 수필집. 2권 1책. 목판본. 서거정은 일류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식견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사적(事蹟)을 널리 채집하여, 위로는 조종조(祖宗朝)의 창업으로부터 아래로는 공경대부(公卿大夫)의
하동금오산봉수대 / 河東金鰲山烽燧臺 [경제·산업/통신]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봉수대. 경상남도기념물 제122호.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봉수대다. 그러나 『세종실록』「지리지」·『경상도지리지』·『경상도속찬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의 하동현조에는 금오산봉수대는 물론 다른 봉수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