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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조병준 / 趙秉準 [역사/근대사]

    1862년(철종 13)∼1931년. 한말의 의병장‧독립운동가. 자는 유평(幼平), 호는 국동(菊東), 평안북도 의주 출신이다. 을미사변 후 평안도의병장으로 각지에서 항전하였고,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항일전을 전개하다 외지로 망명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단(大韓獨

  • 조병직 / 趙秉稷 [정치·법제/정치]

    조사시찰단 참가. 외교관. 외부대신(1833∼1901). 협판내무부사·형조판서·독판교섭통상사무 등을 거쳐 외무독판에 올랐으나, 청일전쟁 중에 일본의 압력으로 한때 실각하였다가, 아관파천 때 친러파에 가담해 학부·법부·농상공부·외부·탁지부의 대신을 거쳐 의정부참정에 올

  • 조병채 / 趙炳彩 [역사/근대사]

    1878-1950. 독립운동가. 일명 병채(秉彩). 충청남도 청양 출신.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의 독립군총사령관 김좌진(金佐鎭)이 파견한 천경수(千景洙)를 만나 군정부를 위한 군자금 모집을 의뢰받고, 1920년부터 김영진(金瑛鎭)·김상수(金相秀)·유기종

  • 조병필 / 趙秉弼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5∼1908). 1883년 참의교섭통상사무가 되어 임오군란의 사후처리를 하였고, 동래부민란이 발생하자 동래부사에 임명되어 난의 진정에 힘썼다. 이조참의·대사간·좌승지·홍문관부제학,병조·이조·형조·공조의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 조병현 / 趙秉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1∼1849). 풍양조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로 안동김씨와의 권력다툼에 앞장섰고, 대사헌·판의금부사·좌참찬·규장각제학·홍문관대제학, 호조·예조·병조·형조·이조의 판서 등 요직을 지냈다. 안동김씨를 배척하는 벽파의 실권자로서 천주교를 탄압하여 기해

  • 조병호 / 趙秉鎬 [정치·법제/정치]

    조사시찰단 참가. 외교관(1847∼1910). 동부승지·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를 거쳐 1881년 수신사로 일본에 가서 관세문제를 논의하고 돌아왔다. 임오군란 당시에는 일본공사를 피신시켰고, 청군을 안내하였다. 1883년 동래민란과 성주민란을 진압하였다. 갑신정변 후 김

  • 조보양 / 趙普陽 [종교·철학/유학]

    1709년(숙종 35)∼1788년(정조 12). 조선 후기 문신·유학자. 증조는 조명한, 조부는 조봉징, 부친은 조원익이다. 외조부는 이기만, 형제로 조규양·조득양·조의양·조몽양이 있다. 1747년(영조 23) 식년시 진사 3등 43위로 합격, 1773년(영조 49)

  • 조봉암 / 曺奉岩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정치인(1898∼1959). 1925년 조선공산당 1차당 창당을 주도하였다. 1932년 상해에서 일본 영사경찰에 붙잡혀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1946년 6월 중도통합노선을 주장하고 조선공산당과 결별하였다. 1948년 초대 농림부장관이 되었다

  • 조봉원 / 趙鳳遠 [종교·철학/유학]

    1855(철종 6) ~ 1933. 증조는 조현상, 조부는 조휘영, 아버지는 조태익, 어머니 남기주의 딸이다. 증조부는 안동김씨와 혼인하여 조휘영. 조규영을 두었고, 예기와 소학을 좋아하였고 1836년에 중산리 주마산 아래로 복거하여 후손들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방산는

  • 조상건 / 趙尙健 [종교·철학/유학]

    1672년(현종 13)∼1721년(경종 1).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조흡, 조부는 조백운이다. 부친 조광보와 모친 정태구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숙부는 조성보, 처부는 이노성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16년(숙종 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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