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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조동좌 / 趙東佐 [종교·철학/유학]
1809년(순조 9)∼1888년(고종 25).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조술지이다. 처음에는 당숙 조술주 문하에 들어가서 수학하며 과거 공부에 힘썼다. 이후 정재 유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벼슬에 대한 뜻을 접고 학문에다가 뜻을 둔 후, 명리를 탐하지 않았고, 오
조득준 / 趙得浚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대한농구협회 기술지도위원 겸 이사를 역임한 체육인. 1915∼1958. 평양 출신. 1930년 평양숭인상업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농구를 시작하였으며, 그 뒤 보성전문학교를 거쳐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 상학부(商學部)를 나오는 동안 계속 센터로 활약하였다. 농
조득중 / 趙得重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부는 조위한, 부친은 조억이다. 윤선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건원릉참봉·광흥창봉사를 지냈다. 1694년(숙종 20) 세자익위사익찬에 올랐다. 평소《논어》를 즐겨 읽었으며, 그의 나이 75세에 졸하였다.
조만식 / 曺晩植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82-?). 3·1운동에 참가했으며,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회장이 되어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다. 조선일보사 사장에 추대되어 언론을 통한 민족운동에 앞장섰고, 백선행기념관을 세워 기독교정신의 실천가로 활동했으며, 조선민주당을 창당해 당수
조만영 / 趙萬永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6∼1846). 딸이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되자, 대사성·판의금부사·지중추부사, 어영·훈련·금위대장, 예조·이조·호조판서 등을 역임하면서, 풍양조씨의 핵심인물로서 세력을 키워서, 기해박해를 통해 안동김씨의 세도를 견제해 나갔다. 글씨에 능했고,
조만원 / 趙萬元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2∼1822). 정조의 총애를 받아 여러 요직을 거쳤고, 순조 때에도 승정원승지·대사간·이조참의·육조의 참판 등을 지냈고, 1818년에 부사로서 연경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강화유수 재임 중 세금감면·향약실시에 노력하였다.
조면호 / 趙冕鎬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3∼1887). 김정희의 척질이며 제자이다. 1837년 급제 후 공조참의를 거쳐 호조참판·지의금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옥수집》이 있고, 유묵으로 예서 2점이 전한다. 또한《완당집》에 추사의 답간 4통이 보인다.
조명교 / 曺命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7∼1753). 한영 증손, 할아버지는 전주, 아버지는 하기, 어머니는 한여우의 딸이다. 1721년 검열에 재직중 신임사화로 파직당하였다. 영조 즉위 후 정언이 되어 9개 조항의 시정을 상소하였다. 이후 교리,부수찬,지평,광주부사,대사성,이조참
조명익 / 趙明翼 [종교·철학/유학]
1691(숙종 17)∼1737(영조 13). 조선 후기의 문신. 석형 증손, 할아버지는 경망, 아버지는 정만, 어머니는 이진명의 딸이다. 1725년(영조 1) 세자익위사세마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대사헌, 강화유수를 역임하였다. 강화유수시절 임지에서 죽
조명정 / 趙明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9∼1779). 노론 강경파로 소론과 정쟁을 벌였는데 소론 이광좌를 공격하여 영조의 노여움을 샀으며, 민백상을 두둔하다가 유배되었다. 1754년 경기좌도심휼사로 세금을 줄여줄 것을 상소하여 시행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