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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전기
충의교위 / 忠毅校尉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무신의 정5품 하계의 품계명.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무산계가 제정될 때 정5품 상계는 충의교위, 하계는 현의교위로 정하였다. 그런데 ≪경국대전≫에서는 무산계 상계의 충의교위는 과의교위로, 하계의 현의교위는 충의교위로 개칭되어 ≪경국
충주 / 忠州 [지리/자연지리]
지명. 신라 때 중원경(中原京)으로 고려 태조 23년에 충주(忠州)로 개칭. 고려 성종조에 12목(牧)의 하나로 되고, 현종조에 8목(牧) 중의 하나로 조선왕조에 들어서도 주목(州牧)으로 답습된 것이다. 별호를 대원(大原)이라고 하였다.
충주구황절요 / 忠州救荒切要 [경제·산업/산업]
1541년(중종 36) 10월 안위(安瑋)·홍윤창(洪胤昌) 등이 지은 구황서(救荒書). 1권. 사본 이 책은 서문·목차·발문 등이 없는 일종의 절목(節目)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27개항이 30면에 필사되어 있다. 이 책은 광복 이후 일본에서 반환문화재(返還文化財)로
충주팔봉서원 / 忠州八峯書院 [교육/교육]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팔봉안길(문주리)에 있는 서원. 1582년(선조 1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자(李耔)·이경연(李慶延)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고 1612년(광해군 4) 김세필(金世弼)·노수신(盧守愼)을 추가 배향하였다. 1672년(
충주향교 / 忠州鄕校 [교육/교육]
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에 있는 향교.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29년(인조 7)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897년 중수하였고, 1936년 군수 김석영(金錫永)
충찬위 / 忠贊衛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의 중앙군으로서 오위의 충좌위에 소속되었던 특수 병종. 1456년(세조 2)에 처음 설치된 것으로 원종공신의 자손들을 편입하게 한 특권적인 병종이었다. 나중에는 ≪경국대전≫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환관입후자 및 양반첩자의 종친가혼취자 등도 충찬위에 소속되는 특전
충청감사 / 忠淸監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사법·행정·군사적 권한을 지닌 종2품 관직. 조선 초기에는 일반 행정과 군정이 구별되어 있었으나, 태종 이후 감사가 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순찰사를 겸하였다. 또한 감영 소재지의 부윤(府尹)이나 목사(牧使)의 직책까지도 겸하게 됨으로써
충훈부 / 忠勳府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공신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던 관서. 세조 때 사를 부로 승격시켰다. 충훈사는 대군과 부원군의 아문이기도 하므로 1466년(세조 12) 부마부의 예에 따라 충훈부로 승격시켰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당상관인 군은 종2품부터 정1품까지 임명되었고, 조관으로는
취봉서원 / 鷲峰書院 [교육/교육]
황해도(현재의 황해남도) 안악군 안악읍에 있었던 서원. 1589년(선조 22)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주자(朱子)와 이이(李珥)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97년(숙종 23)에 ‘취봉(鷲峰)’이라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취유부벽정기 / 醉遊浮碧亭記 [문학/한문학]
조선 초기에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한문소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동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작자의 단편소설집 『금오신화 金鰲新話』에 실려 있다.「취유부벽정기」는 기자조선의 도읍지로 알려진 평양을 배경으로 하여 한 남자 상인과 죽어서 선녀가 된 기자(箕子)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