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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척화비 / 機張斥和碑 [역사/근대사]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있는 비석.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292호. 1995년 3월 1일 이 곳이 부산광역시로 편입되면서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었다. 흥선대원군 정권은 자신들의 쇄국 의지를 모든 국민에게 알리고 경각심을 강화할 목적으로 전국의
길림대검거사건 / 吉林大檢擧事件 [역사/근대사]
1927년 만주 길림에서 독립운동가 300여 명이 중국 군경에게 붙잡힌 사건.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는 1925년 중국과 일본간에 한국독립운동자 체포와 인도에 관하여 합의한 미쓰야협정에 그 원인이 있었다. 길림대검거사건으로 일본당국이 독립운동자 50여 명을 일본경찰로
길주민란 / 吉州民亂 [역사/근대사]
1888년 여름 함경도 길주에서 일어난 민란. 목민(牧民)이 관청에 원통하고 억울함을 호소하였다는 사실에서, 당시 민란의 일반적인 원인인 삼정 등을 통한 이서배(吏胥輩)의 농간 때문 민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 민란으로 민란에 대하여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김갑 / 金甲 [역사/근대사]
1888-미상. 독립운동가. 국내에서는 진원(晋源)이라고 불렀고, 중국망명 후 갑(甲)이라 하였다. 부산 출신. 부산 동명학교(東明學校: 동래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부기학교를 다니다가 3·1운동을 맞아 함양·산청 등지의 항일투쟁 연락책임을 띠고 활동하
김갑수 / 金甲洙 [역사/근대사]
1894-1938.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운동가.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한산면(韓山面) 출신이다. 부농(富農)이었던 김영성(金永聲)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한 이후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에서 위원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귀국하여 1927년 전라북도 완주군(完州
김갑진 / 金甲辰 [역사/근대사]
미상-193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함경북도 성진(城津)이다. 신간회(新幹會)와 성진청년동맹(城津靑年同盟)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신간회와 성진청년동맹이 해체된 후, 두 조직을 기반으로 한 성진농민조합(城津農民組合)을 결성한 후,
김경선 / 金慶先 [역사/근대사]
1862-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 서부(西部; 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貞洞)이다. 1907년(융희 1)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경기도 포천(抱川)에 위치한
김경식 / 金景軾 [역사/근대사]
1870-1940.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인·항일운동가. 한학(漢學)을 공부하다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증산교가 흩어진 이후 그 신도였던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이 세운 증산교 계열의 보천교(普天敎)에 입교(入敎)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는 역시
김경천 / 金景天 [역사/근대사]
1888-193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소안면(所安面)이다. 1913년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리에 김사횡(金仕宖)이 설립한 중화학원(中和學院)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항일의식을 배양시켰다. 1919년
김경태 / 金敬泰 [역사/근대사]
187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했으며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으나 일본경찰에 붙잡혀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