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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정제두 / 鄭齊斗 [종교·철학]
1649-1736.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당시 이단시하던 양명학을 고집하여 조선 양명학의 태두가 되었다. 그는 심즉리설에 입각하여 주자학의 성즉리설을 비판했다. 저서로는 <하곡집>이 있다.
정조 / 正祖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제22대 왕(1752∼1800). 재위 1777∼1800년. 1759년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요절한 효장세자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6년 즉위하자 곧 규장각을 설치하여 이로써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정치를 추진하는 가운데 정권
정존겸 / 鄭存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2∼1794). 1750년(영조 26) 생원시에 합격, 다음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 시파로서 우의정에 발탁되고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1781년《영조실록》과 《경종수정실록》 편찬의 실록청총재관을
정존중 / 鄭存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1∼1798).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음사로서 참봉이 되었다가 누천하여 1780년(정조 4) 광주목사로서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중용되었다. 1791년 한성부판윤에 이어 개성부유수를 거쳐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
정종 / 鄭悰 [종교·철학/유학]
?∼1461(세조 7). 조선 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충경이다. 1450년(세종 32)에 문종의 딸 경혜공주와 혼인한 뒤 영양위에 봉하여지고, 단종 초기에 형조판서가 되어 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정종로 / 鄭宗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1738∼1816). 이상정의 문하에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고, 주리론적인 입장에서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경학과 문장이 융성하여 영남 제1의 인물.” 이라는 채제공의 평으로 의금부도사에 특진되었고, 사포서별제·강령현감·함창현감에
정종명 / 鄭宗溟 [종교·철학/유학]
1565(명종 20)∼1626(인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위 증손, 할아버지는 유침, 아버지는 철이다. 어머니는 유강정의 딸이다. 형조참의 홍인걸의 사위이다. 이이·성혼의 문인이다. 저작으로 『송강유고』의 부록에 실려 있는『백씨유고』가 있다.
정종명 / 鄭鍾鳴 [정치·법제/정치]
1895년(고종 32)∼미상. 여류 독립운동가·간호원. 전라남도 목포 출신. 1922년 4월 1일 동지 여자고학생상조회를 서울에서 조직, 1925년 5월에 박원희·김필애 등 20여명과 조선여성동우회를 서울에서 조직 운영하기 시작, 이들이 곧 뒷날 근우회를 조직하고 항일
정종호 / 鄭宗鎬 [종교·철학/유학]
1875년(고종 12)∼1954년. 일제 강점기 유학자. 부친 정재설과 모친 재령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노상익의 딸이다. 중부 정재기, 결혼 후에는 노상익·노상직에게 학문을 배웠다. 파리장서 사건 때 본문을 칠곡군에 있는 장석영으로부터 받아서 대구의 윤상태에
정준 / 鄭儁 [종교·철학/유학]
1573년(선조 6) ~1644년(인조 22) 조선 중기 문신. 정몽주 8세손, 부친은 정응선이다. 희릉참봉과 건원릉참봉을 거쳐서 1623년(인조 1) 6월에 사재감직장을 지냈고, 1625년(인조 3) 7월에 예빈시주부를 지냈으며, 이후 돈령부판관‧종친부전부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