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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김만중 / 金萬重 [문학/한문학]
1637년(인조 15)∼1692년(숙종 18). 조선 후기의 문신·소설가.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이다. 김만중은 그는 어머니로부터 엄격한 훈도를 받고 14세인 1650년(효종 1)에 진사초시 합격, 16세인 1652년(효종 3)에 진
김만풍 / 金萬豊 [역사/근대사]
1886-1962.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제주도 서귀포 성산읍(城山邑) 오조리(吾照里)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5월 성산포(城山浦)에서 면민씨름 대회를 개최하였을 때 씨름을 구경하던 일본어선단 선원 2백여 명과 지방민과 격투가 벌어져 김명
김매순 / 金邁淳 [종교·철학/유학]
1776(영조 52)∼1840(헌종 6).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참봉 김이수, 어머니는 죽산안씨로 안종주의 딸이다. 1795년(정조 1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사인을 거쳐 초계문신이 되었고, 그뒤 예조참판을 거쳐 1821년(순조 21) 강화부유
김맹 / 金孟 [종교·철학/유학]
1410(태종 10)∼1483(성종 14). 조선 전기의 문신. 김항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서, 아버지는 김극일, 어머니는 한성부윤 이간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감찰·김천도찰방·예조좌랑이 되었다. 이후 오위도총부경력을 역임하였다.
김맹권 / 金孟權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학자. 아버지는 감찰 김중로. 일찍이 진사가 되고 문명이 높아 집현전학사로 뽑혔다. 세종의 신임을 받아 뒤에 단종이 된 왕세손의 보필을 부탁받았으나, 1455년(세조 1)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자,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가 끝내 과거를 보지 않
김면 / 金沔 [종교·철학/유학]
1541년(중종 36)∼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의 학자·의병장. 아버지는 경원부사 김세문, 어머니는 김해 김중손의 딸이다. 조식과 이황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조종도·곽준·문위 등과 함께 거창과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김명권 / 金明權 [역사/근대사]
1889-1923.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평안남도 덕천(德川) 출신. 이근(利根)의 아들이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기독교에 입교하여 장로가 되었다.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국내에 특파되
김명규 / 金明奎 [역사/근대사]
1893-1977년.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9년 3·1운동의 일환으로 그해 4월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시위 도중에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았다. 1920년 서울의 황상규(黃尙奎, 일명 白民)의
김명동 / 金明東 [역사/근대사]
1902-1950. 독립운동가·제헌국회 의원. 충청남도 공주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될 때 발기인 34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창립에 기여하였으며, 그뒤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민족통일총본부 사
김명립 / 金命立 [역사/근대사]
1893-1978. 한말의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유근(有根). 경상북도 봉화 출신. 성원(聖元)의 아들이다. 1907년부터 의병장 이강년(李康埏)의 부대에서 활동하던 아버지를 귀가시키고 뒤를 이어 의병진에 가담하였다. 경상북도 일대에서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김명복 / 金明福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체육지도서』, 『체육개론』 등을 저술한 학자. 평안북도 정주 출생. 오산중학교를 거쳐 1935년 일본체조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오산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7년부터 평양교원대학 교수, 1954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장·교육대학원장·부총장을 역임하였
김명석 / 金命錫 [종교·철학/유학]
1675년(숙종 1)∼1762년(영조 38).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 김태중과 모친 홍극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갈암 이현일의 문인으로 향시에는 여러 번 장원하였으나 대과에서 연이어 낙방한 뒤로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고향에 머물면서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김명세 / 金明世 [역사/근대사]
미상-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였다. 세린하(細鱗河)에서 조직 활동을 하던 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었
김명심 / 金明心 [역사/근대사]
1881-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북도 청주시(淸州市)이다.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8년(융희 2) 평소 지니고 있던 반일의식
김명우 / 金明友 [역사/근대사]
1887-195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華城郡) 장안면(長安面)이다. 1919년 이영쇠(李永釗)·장소진(張韶鎭)·장제덕(張濟悳)·차희식(車喜植)·차병한(車炳漢)·차병혁(車炳爀)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2월 이순모(李順模) 등과
김명원 / 金命元 [종교·철학/유학]
1534(중종 29)∼1602(선조 35). 조선 중기의 문신. 김치세의 증손, 할아버지는 직제학 김천령, 아버지는 대사헌 김만균,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현감 안준의의 딸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1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평안병사·호조참판·전라감사·
김명제 / 金命濟 [역사/근대사]
1863-1926.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홍면(洪) 등이 전개한 수원군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부터 송산면 사강리의 면사무소에서 1백여 명의 주민과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시위운동에 참
김명진 / 金命鎭 [역사/근대사]
1908-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농민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榮州) 평은(平恩)이다. 1923년 영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농업에 종사하며 영주청년동맹 평은지부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10월 경상북도 영주에서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준비위원회(赤色
김명희 / 金明熙 [역사/근대사]
미상-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한 후, 곽문(郭文)·김동삼(金東三)·김응섭(金應燮)·김형식(金衡植)·남정섭(南廷燮)·양규열(梁圭
김몽화 / 金夢華 [종교·철학/유학]
1723년(경종 3)∼1792년(정조 16).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상주, 조부는 김형섭이다. 부친 김유수와 모친 이석망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 김몽의가 있다. 청대 권상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 생원 3등 37위로 합격,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