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지명 > 고지명 총 60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지명 > 고지명
거야 / 巨野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옛 지명. 원래 백제의 야서이현(也西伊縣)인데, 757년(경덕왕 16) 야서(野西)로 고쳐 태산군(太山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거야로 이름을 바꾸고, 1118년(현종 9) 전주로 이속시켰다가, 뒤에 김제로, 다시 금구로
거타주 / 居陀州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거창과 진주 지역의 옛 지명. ‘거타’는 ‘크다’와 같은 말로서 ‘큰 언덕’ㆍ‘큰 벌판’을 뜻한다. 거열성(居列城, 또는 居烈城)이라고도 하였으며, 고타(古陀)ㆍ거타(居陀)ㆍ자타(子陀 또는 子他) 등으로도 불리었다. 현재 거창읍 상리에 당시의 거열성터가 남아
결성 / 結城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홍성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결기현(結己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결성군(潔城郡)으로 고치고 신읍(新邑)ㆍ신량(新良) 등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 운주(運州)에 속하였고, 1172년(명종 2) 결성(結城)으로 고치고 감
경상우도 / 慶尙右道 [지리/인문지리]
조선시대에 경상도 지방의 행정구역을 동·서로 나누었을 때 경상도 서부 지역의 행정구역. 1407년(태종 7) 군사행정상의 편의를 위하여 경상도를 좌·우도로 나누어서 낙동강 동쪽을 경상좌도(慶尙左道), 그 서쪽을 경상우도(慶尙右道)라 하였다. 1519년(중종 14) 좌·
경상좌도 / 慶尙左道 [지리/인문지리]
조선시대에 경상도 지방의 행정구역을 동·서로 나누었을 때 경상도 동부 지역의 행정구역. 1407년(태종 7) 군사행정상의 편의를 위하여 경상도를 좌·우도로 나누어서 낙동강 서쪽을 경상우도, 그 동쪽을 경상좌도라 하였다. 1519년(중종 14) 좌·우도에 각기 감사를 두
경양 / 慶陽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옛 지명. 직산현(稷山縣) 북서쪽 40리에 있었다. 본래 고려 아주(牙州)의 하양창(河陽倉)이었던 곳인데, 뒤에 경양현으로 승격되었다. 이곳에 영(令)을 두어 염장관(鹽場官)을 겸임하게 하였다. 천혜의 지리적ㆍ전술적 중요성을 보유한 지역으로 삼국시
계성 / 桂成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창녕 지역의 옛 지명. 신라 때의 이름은 알 수 없고, 고려 현종 때 밀성군(密城郡)에 속하였다가 1356년(공민왕 5) 영산현(靈山縣)의 임내(任內)로 하였다. 공양왕 때 다시 밀성군에 속하였다가 1394년(태조 3) 영산군의 속현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고구 / 高丘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구화현(仇火縣)이었던 것을 신라의 경덕왕이 고구현(高丘縣)으로 고쳤다. 『대동여지도』에는 고악(高岳)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려 현종 때 안동부의 임내(任內)로 하였다가, 공양왕이 의성군에 합속시켰다. 세종 때 이곳에 잠실(蠶室)을
고내 / 高內 [지리/인문지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의 옛 지명. 제주 서쪽 45리에 있다는 기록이 대부분인데, 『탐라지(耽羅志)』에는 35리로 나와 있다. 신라 때 고후(高厚)를 봉하면서 촌(村)을 두었다가 고려 의종 때 촌을 나누어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원종 때 삼별초의 난을 평정한 뒤 이웃
고령 / 古寧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상주 지역의 옛 지명. 원래 고령가야(古寧加耶)인데 신라가 이를 병합하고 고동람군(古冬攬郡, 또는 故陵縣)이라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고령으로 바꾸고 가선(嘉善)ㆍ관산(冠山)ㆍ호계(虎溪)를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61년(광종 12) 함녕군(咸寧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