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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강도구 / 姜道求 [역사/근대사]
1902-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홍원(洪原)이다. 학천보통학교와 서울 중동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중동학교 재학 시절 북풍회계 학생운동단체인 서울학생구락부 간부로 활약하였다. 1925년 도쿄에서 약 2년간 하던 공부를 학비부족으로 중단하고 귀
강도사 / 講道師 [종교·철학/개신교]
장로교 교역자의 일종. 장로교의 교리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장로회총회가 조직된 직후부터 기록에 나타난다. 강도사 자격은 교단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기본적으로 교단 총회신학교에서 3년의 과정을 마친 후에 총회에서 시행하는 강도사 고시에
강도영 / 姜道永 [종교·철학/천주교]
항일기의 천주교인·신부(1863-1929). 우리나라 처음으로 사제로 서품된 한국인 신부 3인 중 한 명으로, 세례명은 마르코이다. 1896년 약현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았고, 경기도 안성의 미리내 본당의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했으며, 첫번째 한국인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
강동범 / 姜東範 [역사/근대사]
1892-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성진(城津)이고, 거주지는 중국이다. 1929년 8월 북간도(北間島) 혁명자구원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김재봉(金在鳳)·유진희(兪鎭熙)·김약수(金若水) 등이 서울에서 항일투쟁 방식을 공산주의 방식
강두석 / 姜斗錫 [역사/근대사]
1903-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진주(晉州)이다. 일본 도쿄의 중앙대학 경제과를 졸업한 후 귀국하였는데, 일본 유학 당시 사회과학 연구를 통해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1928년 2월 진주농민연맹이 창립되자 쟁의부 의원에 임명되었으며,
강두안 / 姜斗安 [역사/근대사]
1922-1944.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통영 출신. 1939년 대구사범학교 재학중 박효준(朴孝濬)·이태길(李泰吉)·문홍의(文洪義) 등과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표면상으로는 문예활동을 표방하여 대구사범학교 문예부를
강만년 / 姜萬年 [역사/근대사]
미상∼1919.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강계(江界)이다. 자세한 활동 이력 및 출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백삼규(白三圭)·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친일파 숙
강매 / 姜邁 [종교·철학/개신교]
1878-1941. 장로, 기독교 문필가. 최병현, 전덕기 등과 교류하면서 기독교인이 되었다. 정동교회에 출석하였으며, 장로로 시무하였다. 1907년 일본대학 고등사범 수법과를 졸업하였다. 귀국후 배재학당 등에서 가르쳤다. 언론계에도 투신하여 조선일보, 중앙일보, 시대
강명규 / 姜明奎 [역사/근대사]
1896-1983.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 호는 위석(渭石). 황해도 봉산 출신. 경성사립오성학교(京城私立五星學校)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재학중에 3·1운동에 참가하고, 대일무력항쟁을 계획하려다 비밀이 누설되어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22년 나석주
강명수 / 姜明秀 [역사/근대사]
1908-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1927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신흥동(新興洞)에서 동불청년회(東佛靑年會)를 조직하고 청년회 고문직을 맡아 활동하면서 청년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 해결방안 등을 역설하며 힘썼
강문영 / 姜文永 [역사/근대사]
1915-194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해남군(海南郡)이다. 해남공립보통학교(현 해남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1929년 6월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장재성(張載性) 등 동학생 20여
강문주 / 姜文周 [역사/근대사]
1879-1945.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대야면(大野面) 지경리(地境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강치국(姜治國) 또는 강치국(姜致國)이며, 6대 독자이다. 소년시절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하였다. 서당에서 한학공부를
강문진 / 姜文鎭 [역사/근대사]
1869-1929.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 호는 중현(中見), 또는 중현(仲現). 나주 출생. 1920년에 전협(全恊) 등이 조직한 대동단(大同團)에 입단,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조달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활동지역은 금산과 공주지역으로 192
강문호 / 康文昊 [역사/근대사]
1898-1986.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목사. 호는 삼우(三憂)이며, 본관은 신천(信川)이다. 제주도 서귀포시(西歸浦市) 중문동(中文洞)에서 출생하였다. 1914년 강규언(姜圭彦)과 같이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전북 옥구군(沃溝郡)의 영명중학교(永明中學校), 서울
강박 / 姜樸 [종교·철학/유학]
1690(숙종 16)∼1742(영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강홍익의 증손, 할아버지는 강언, 아버지는 강석훈, 어머니는 이서우의 딸이다. 큰아버지인 강석번에게 입양되었다. 1714년(숙종 40) 절일제에 장원, 이듬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 부교리
강병일 / 姜秉一 [역사/근대사]
1888-1928. 독립운동가. 일명 병일(丙日). 함경북도 회령 출신. 1919년 만주 길림성 혼춘현(琿春縣)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 애국사상을 고취하였다. 또한, 휘하의 의사단(義士團)과 최경천(崔慶天)의 포수단(砲手團)을 통합, 군무부(軍務部)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강복선 / 姜復善 [종교·철학/유학]
1852(철종 3)∼1891(고종 28) 아버지는 강응주, 어머니는 청주 한씨이다. 유시수를 스승으로 섬겼다. 유시수의 문인 중에 이항로에게 수학했던 홍대심이라는 자가 있어 그와 사우관계를 맺었다. 이익의 문집을 교정하는 일에 참여 요청을 받은 적이 있으나, 끝내 성사
강복성 / 康復誠 [종교·철학/유학]
1550(명종 5)∼1634(인조 12). 조선 중기의 문신. 강중진의 증손, 아버지는 강유선이다.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한 뒤, 참봉·직장·찰방 등을 역임하였다. 1595년유성룡의 천거로 장현광 등과 함께 발탁되어 장수현감이 되었으며, 곧 김제군수로 옮
강복중 / 姜復中 [문학/고전시가]
1563년(명종 18)∼1639년(인조 17).조선 중기의 문신. 고조부는 중화재(中和齋)강응정(姜應貞)이며, 아버지는 광흥창봉사강령(姜齡)이다. 학문은 그다지 깊지 않았으나 여러 편의 시조 작품을 남겼다. 시조 작품인 「수월정청흥가(水月亭淸興歌)」 21수에는 청계망사
강봉문 / 姜鳳文 [종교·철학/유학]
1735년(영조 11)∼1815년(헌종 14). 아버지는 강득위이다.유홍원에게서 배웠다. 가문은 비록 한미했지만, 효자로 이름이 높았고, 학문에 힘을 쏟아 그를 따르는 문인이 100여인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저서로《옥계유고》가 있다.《옥계유고》는 1829년(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