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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김동신 / 金東臣 [역사/근대사]
1871-1933. 의병장. 자는 원표(元表), 호는 청암(淸菴). 충청남도 회덕 출신. 고종 때 무과에 올라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승(秘書丞)을 제수받았다. 1905년 10월 22일 사직소를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1906년 봄 최익현(崔益鉉)과 민종식(
김동우 / 金東寓 [역사/근대사]
1896-198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일선(金一鮮)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창선면(昌善面)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 독립선언식에 참가하여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
김동원 / 金東元 [역사/근대사]
1882-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대동 출신. 1903년에 평양일어학교를 졸업하였다. 1906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1년 후 신병으로 중퇴, 귀국하였다. 1910년부터 6년 동안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대성학교(大
김동은 / 金東垠 [역사/근대사]
1908-1978.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보성 출신. 1929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 5학년 재학중 김종섭(金鍾燮)·박기원(朴基源)·장재성(張載性) 등과 무등산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회합을 갖고 광주고보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1926년 이후 학생비밀결사로서 항
김동필 / 金東弼 [역사/근대사]
1860-1944. 항일기의 애국지사. 1905년부터 일제침략을 규탄하는 상소운동을 벌였으며, 을사조약 체결 후에는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자신회’를 조직하고, 1924년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위원, 1930년 2월 신간회 집행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82년
김동협 / 金東鋏 [역사/근대사]
192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선소면(仙沼面)이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강제 징용과 각종 수탈을 만행하자, 일본의 강압적 행위에 대한 분노로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1943년 조종희(趙
김두만 / 金斗萬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4월 2일 수진면 고향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뒤 동지들과 같이 만주로 망명하여,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인 임시의사회(臨時議事會)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는 관전현(寬甸縣)을 근거지로 하
김두우 / 金斗牛 [역사/근대사]
1898-193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평산(平山)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 등을 비밀리에 제작하였다. 3월 31일 황해도 평산군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에서 김예식(金禮植)·서홍균(徐洪均)·정학규(鄭學奎) 등과 함께
김두찬 / 金斗燦 [역사/근대사]
1919-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택달(金澤達)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동(江東)이다. 1936년 평양의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 재학 중, 일본이 강압적으로 시행했던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주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연행되었다. 1938년 김길순
김득명 / 金得鳴 [역사/근대사]
1923-2009.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리원(沙里院)이다.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발발시키고 군사력 보충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 징집하였다. 김득명(金得鳴)은 이때 강제 징병되어 중국 상해에 주둔한 일본 군대에 배속되었다. 그러
김마리아 / 金瑪利亞 [역사/근대사]
1891-194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자. 1919년 2·8운동과 3·1운동에서 활약하였고, 이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상해애국부인회 간부 등을 지냈다.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후 1965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김막동 / 金莫同 [역사/근대사]
1887-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이다.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9년(융희 3) 김동구(金東九) 의진(義陣
김만수 / 金萬秀 [역사/근대사]
1894-192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회일(會一).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이후 서로군정서에 가담했다. 1924년 최병호·유기동 등과 함께 하얼빈에서 일본 총영사와 일본경찰 10여명을 사살하고 순국했다.
김만와 / 金晩窩 [역사/근대사]
1898-1967. 독립운동가. 일명 순학(舜鶴). 함경북도 무산 출신. 1919년 만주에서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에 입단하였으며, 1922년에는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여 독립군자금 조달과 독립군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뒤 1926년 고려혁명당에 가입하여 정의부(正義府)의
김만풍 / 金萬豊 [역사/근대사]
1886-1962.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제주도 서귀포 성산읍(城山邑) 오조리(吾照里)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5월 성산포(城山浦)에서 면민씨름 대회를 개최하였을 때 씨름을 구경하던 일본어선단 선원 2백여 명과 지방민과 격투가 벌어져 김명
김명권 / 金明權 [역사/근대사]
1889-1923.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평안남도 덕천(德川) 출신. 이근(利根)의 아들이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기독교에 입교하여 장로가 되었다.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국내에 특파되
김명규 / 金明奎 [역사/근대사]
1893-1977년.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9년 3·1운동의 일환으로 그해 4월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시위 도중에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았다. 1920년 서울의 황상규(黃尙奎, 일명 白民)의
김명동 / 金明東 [역사/근대사]
1902-1950. 독립운동가·제헌국회 의원. 충청남도 공주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될 때 발기인 34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창립에 기여하였으며, 그뒤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민족통일총본부 사
김명립 / 金命立 [역사/근대사]
1893-1978. 한말의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유근(有根). 경상북도 봉화 출신. 성원(聖元)의 아들이다. 1907년부터 의병장 이강년(李康埏)의 부대에서 활동하던 아버지를 귀가시키고 뒤를 이어 의병진에 가담하였다. 경상북도 일대에서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김명세 / 金明世 [역사/근대사]
미상-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였다. 세린하(細鱗河)에서 조직 활동을 하던 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었
김명심 / 金明心 [역사/근대사]
1881-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북도 청주시(淸州市)이다.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8년(융희 2) 평소 지니고 있던 반일의식
김명우 / 金明友 [역사/근대사]
1887-195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華城郡) 장안면(長安面)이다. 1919년 이영쇠(李永釗)·장소진(張韶鎭)·장제덕(張濟悳)·차희식(車喜植)·차병한(車炳漢)·차병혁(車炳爀)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2월 이순모(李順模) 등과
김명제 / 金命濟 [역사/근대사]
1863-1926.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홍면(洪) 등이 전개한 수원군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부터 송산면 사강리의 면사무소에서 1백여 명의 주민과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시위운동에 참
김명진 / 金命鎭 [역사/근대사]
1908-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농민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榮州) 평은(平恩)이다. 1923년 영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농업에 종사하며 영주청년동맹 평은지부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10월 경상북도 영주에서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준비위원회(赤色
김명희 / 金明熙 [역사/근대사]
미상-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한 후, 곽문(郭文)·김동삼(金東三)·김응섭(金應燮)·김형식(金衡植)·남정섭(南廷燮)·양규열(梁圭
김무석 / 金武錫 [역사/근대사]
1887-1960.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제주도 좌면(左面) 월평리(月坪里) 432 출신이다. 1918년 10월 5일 제주도 남제주(南濟州) 법정사(法井寺)에서 승려 김연일(金連日), 강창규(姜昌奎), 방동화(房東華) 등이 주도한 항일 무력
김문빈 / 金文彬 [역사/근대사]
1883-1957. 한말의 의병. 일명 익진(翼軫), 호는 석계(石溪). 평안남도 용강(龍岡) 출신. 일찍이 동학당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에는 의병장 신경칠(辛景七)의 참모장 및 중군장으로 황해도 해주·신천·평산 등지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고산전투에서
김문준 / 金文準 [역사/근대사]
1894-1936.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목우(木牛)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조천(朝天)에서 태어났다. 1910년(융희 4) 3월 의신학교(義信學校) 보통과를 졸업하고 1912년 제주공립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1915년 3월 경기도 수원의 조선총
김문희 / 金文熙 [역사/근대사]
1893-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문희(金文凞)이다. 본관은 해산(海山)이고, 본적은 평안북도 초산(楚山)이다. 1919년 7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내무부 소관인 국내 지방행정조직이자 국내 연락기관인 연통부(聯通府)를 국내의 각 도·군·면 단
김백능 / 金百能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일명은 김충환(金忠煥)이다. 제주도 조천(朝天)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3·1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김장환(金章煥)이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온 것을 계기로 제주도 조천(朝天)에서도 1919년 3월 21일 이른바 조천만세운동이 일어
김병조 / 金秉祚 [역사/근대사]
1877-194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일재(一齋). 1919년 3·1운동에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상임이사·임시의정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만주에서 <한족신문>을 발행하였다. 저술로 <한국독립운동사략> 등
김병주 / 金炳周 [역사/근대사]
미상-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삭주군(朔州郡)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밀리에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여 3월 21일 의주(義州) 영산(永山)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긴급 출동한
김병태 / 金餠泰 [역사/근대사]
1899-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빈(金斌)·김빈(金彬)·조국동(曺國棟)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부산(釜山)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중국 상해(上海) 불조계(佛租界)이다. 1918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1919년 중국 길림성(吉林省)에
김병학 / 金炳學 [역사/근대사]
1922-1983. 항일기의 광복군. 1945년 4월 학병탈출 조직망 강화와 일본군작전 교란의 임무를 띠고 쉬저우지구 공작원으로 임명되었다. 계획이 사전에 일본헌병대에 탐지되어 몇 명만 탈출시켰고, 그뒤에도 쉬저우에 잠복하여 학병탈출공작, 적의 정보수집공작을 하였다.
김보형 / 金寶炯 [역사/근대사]
189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군자금모금 등을 맡았다. 1922년 교전 중 두 팔에 관통상을 입고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1927년 동흥농민회에 참여하고, 1928년 고려혁명당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김복만 / 金福萬 [역사/근대사]
1907-197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현경면(玄慶面)이다. 광주농업고등학교(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11월 3일 국순엽(鞠淳葉)·김광용(金匡溶)·김창주(金昌柱)·김한필(金漢苾)·문승수(文升洙)·박인생(
김봉관 / 金鳳官 [역사/근대사]
1869-1922.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갑산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광복군사령부에 가담하였다. 1922년 6월 홍범도(洪範圖)의 비밀대원으로서 많은 동지들과 함께 갑산경찰서 함정주재소(含井駐在所)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부장 부부를 죽이고 건물을 불태우고, 무
김봉국 / 金鳳國 [역사/근대사]
1890-1932년. 한말의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선천 출신. 1919년 평안남도 선천군의 천도교 대표로서 독립선언문을 인쇄하여 배포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평양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다. 손병희(孫秉熙)가 죽자 그의 독립운동노선을 계승하기 위하여, 만주에서 이종
김봉규 / 金鳳奎 [역사/근대사]
1892-1968.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월성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참여하였다. 1920년 송두환(宋斗煥)·최윤동(崔胤東)·이수영(李遂榮)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대구일대를 중심으로, 일반국민으로부터 직장인·부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
김봉률 / 金奉律 [역사/근대사]
1897-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야면(伽倻面)이다. 해인사(海印寺)에서 학림학생(學林學生)으로 수학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후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강재호(姜在鎬)·기상섭(奇尙燮)·송복만(宋福晩
김봉성 / 金鳳性 [역사/근대사]
1901-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봉성(金鳳成)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서(江西)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동대문구(東大門區) 신설동(新設洞)이다. 민족대표 이승훈(李昇薰)이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펼
김봉수 / 金鳳秀 [역사/근대사]
1902-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봉수(奉秀). 아버지는 이형(利亨)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 생활이 곤란하여 1918년 만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4년 관전현 화수구(寬甸縣 華樹溝)에서 정의부(正義府)에 가입, 무장항일운동에 전력하였다. 1928년
김봉식 / 金鳳植 [역사/근대사]
1904-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영변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1924년 대한통의부 독립결사대에 가입하였다. 1925년 일제기관을 파괴하고 일본경찰과 그 앞잡이들을 숙청하였고, 군자금모금 명령을 받고 동지 정문빈(鄭文彬)·김경보(金敬甫)·채무식(蔡武植) 등
김봉원 / 金鳳源 [역사/근대사]
1896-1945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 평안남도 강동(江東) 출신. 1917년 4월 만주 유하현 삼원보(柳河縣 三源堡)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학하였다. 1919년 8월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으로부터 군자금 모금 지령을 받고 부
김봉한 / 金鳳漢 [역사/근대사]
미상-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는데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철마별영(鐵馬別營)에 가담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하였다. 김상옥(金尙玉)·김용택(金龍澤)·김세진(金世鎭)·박영
김봉현 / 金鳳鉉 [역사/근대사]
1885-1924. 독립운동가. 일명 순구(舜九). 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 일대에서 이유석(李裕奭)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외가천리에 있던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천여 명의 만세운동군중과 독립만세를
김봉호 / 金鳳昊 [역사/근대사]
1895-1982.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일명 김봉빈(金鳳彬)이다. 전라북도 전주(全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4일 박상선(朴尙鮮)·최병태(崔炳台)·김경신(金敬)·김점쇠(金點釗) 등과 전주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3월 14일 3시 경 일본 경찰의 삼
김봉화 / 金奉和 [역사/근대사]
1882-191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제주도 안덕(安德)에서 태어났다. 1918년 10월 5일 서귀포 법정사(法井寺) 승려 김연일(金蓮日)·강창규(姜昌奎) 등의 주축이 되어 400여 명의 주민이 중문주재소를 습격한 무오법정사항일운동에 승
김붕준 / 金朋濬 [역사/근대사]
1888년∼1950년.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기원(起元), 호는 당헌(棠軒). 평안남도 용강(龍岡) 출생. 1907년 안정근(安定根)과 함께 상경하여 신민회(新民會)에 몸담고,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에 가입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 승동교
김사민 / 金思民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통의동(通義洞)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 종로구 계동(桂洞)이다. 동생으로 200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은 김사국(金思國)이 있다. 어
김상묵 / 金相默 [역사/근대사]
1884-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북도 고창(高敞)이다.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국권 피탈에 대해 비분강개하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 이대국(李大局) 의진(義陣)에 가담하여
김상수 / 金祥洙 [언론·출판/언론·방송]
1894-1945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언론인. 전라남도 신안군(新安郡) 지도(智島)에서 태어났다. 고종(高宗)의 시위무관(侍衛武官)으로 있다가, 일본이 침입하자 상해(上海)와 만주(滿洲), 북간도(北間島), 용정촌(龍井村) 등지로 망명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
김상신 / 金相信 [역사/근대사]
1887년∼1948년. 의병장. 별명은 성률(成慄, 또는 成律). 전라북도 임실 출신. 1907년 9월 의병에 가담, 대장 이석용(李錫庸)휘하에서 창의동맹(倡義同盟)의 도로부장이 되어 전주·남원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9월 6일 당시 일본헌병의 밀정이던 김실일
김상언 / 金商彦 [역사/근대사]
1873-1965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제주도 외도(外都)에서 태어났다. 1918년 10월 5일 서귀포 법정사(法井寺) 승려 김연일(金蓮日)·강창규(姜昌奎) 등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무오법정사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김봉화(金奉和), 김삼만
김상옥 / 金尙沃 [역사/근대사]
1901-1969년. 독립운동가. 일명 상옥(尙玉)·상옥(相沃). 평안북도 선천 출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향리인 선천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평양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다. 그해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단체인 대한청년단연합회에 가입
김상옥 / 金相玉 [역사/근대사]
1890-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한지(韓志). 1910년에는 경성영어학교를 다녀 국제정세와 서양문화에 안목을 넓혔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은 3.1독립운동 이후부터였다. 혁신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혁신공보>를 발간해 독립사상을 계
김상을 / 金商乙 [역사/근대사]
1918-1991.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충청남도 서천(舒川)이다.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중국 북경으로 이주한 후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가담하여 항일무장투쟁활동을 하였다. 1940년 11월 광복군(光復軍)에 입대한 후, 광
김상포 / 金相忁 [역사/근대사]
1882-190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상근(相根)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전라남도 영암(靈岩) 신북면(新北面)에서 태어났다.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 설파(雪波) 김백언(金伯彦)의 후손이다. 1907년(융희 1) 열락재(說樂齋)에서 박남평(朴南平
김상헌 / 金祥憲 [역사/근대사]
1893-1945. 독립운동가. 일명 배달옹(裵達翁), 또는 달(達). 경상남도 양산 출신. 1918년 중앙학교(中央學校)의 신상완(申尙玩)·김법린(金法麟)·정병헌(鄭秉憲) 등과 유심회(唯心會)를 조직, 민족사상고취와 불교연구를 하다가, 1918년 11월경 한용운(韓
김상훈 / 金相訓 [역사/근대사]
1874-192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수신면(修身面)이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는 소식이 전파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홍일선(洪鎰善)이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 갈전면(葛田面
김석 / 金晳 [역사/근대사]
1911-1983년.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함평 출신. 전라남도 영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작은아버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金澈)을 따라 상해로 건너가서, 1928년 상해에 있는 영국계 중학교 퍼블릭스쿨을 졸업하고, 1930년 상해법정대학 정치과에
김석창 / 金錫昌 [종교·철학/개신교]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목사(1876-1950). 1920년 미국의원단에게 진정서를 제출하고 선천경찰서를 폭발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이후 평안북도 예수교장로회 총회장·선천군 인민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유엔군 후퇴이후 공산당에 의해 총살당하
김석황 / 金錫璜 [역사/근대사]
1894-1950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일명 윤황(潤璜). 황해도 봉산 출생. 1919년 2월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재학 때 2·8독립운동에 막후 주요인물로 회의참석 연락, 동지규합, 문서작성을 지원해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체포되었다가 훈방되자 곧 상해
김선량 / 金善亮 [역사/근대사]
1899-미상. 독립운동가. 황해도 안악 출신. 3·1운동 때 선천의 신성학교(信聖學校)학생으로 이승훈(李昇薰)의 지시를 받은 교사 홍성익(洪盛益)·김지웅(金志雄)·양준명(梁濬明) 등의 지도 아래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격문과 태극기를 제작하여 3월 1일 선천
김선이 / 金仙伊 [역사/근대사]
1880-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榮州)이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1909년(융희 3) 5월 김상태(金相泰) 의진(義陣)에 가담하였다.
김성 / 金星 [역사/근대사]
1890-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원산시(元山市)이다. 만주로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만주 일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하기 위해 계화(桂和)·서일(徐一)·양현(梁玄)·채오(蔡五) 등과 함께 정의단(正
김성률 / 金聲律 [역사/근대사]
1920-1943.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황해도 연백(延白)이다. 1941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대장 나월환(羅月煥)과 함께 광복군 제5지대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1942년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中央戰時幹部訓練)
김성범 / 金成範 [역사/근대사]
1899-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성범(金聖範)이다. 출신지는 평안북도 초산(楚山)이다. 1923년 천마단(天摩團)에 가입한 후 사령부의 오장(伍長)을 지내면서 국경을 오가며 평안북도 초산·창성(昌城)·벽동(碧潼)·강계(江界)·희천(熙川) 등
김성수 / 金聖壽 [역사/근대사]
1900-1969년. 독립운동가. 일명 주열(朱烈). 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9년 밀양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26년 중국 광둥(廣東)의 황푸군사정치학교 보병과에 입학하였고,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였다. 1928년 상해에서 남화한인청년
김성숙 / 金星淑 [역사/근대사]
1898-196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인. 호는 운암(雲巖). 3·1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중국으로 망명하여 고려유학생회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일하였다. 이후 혁명단체인 창일당을 조직하고, 《혁명》을 발간하였으며, 조선민족전선연맹을 조직하였다. 해방이후 환국하여 정
김성업 / 金性業 [역사/근대사]
1886-1965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대동 출신. 1912년 평양 대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재학중 안창호(安昌浩)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13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고원이 되었으나 1915년 사직하고, 이후 회사 사무원을 거쳐 동아일보 평양지국장으로 근무
김성엽 / 金聖燁 [역사/근대사]
1896-1966년. 독립운동가. 일명 성엽(成燁).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4년 선천(宣川)의 신성중학(信聖中學) 3학년을 중퇴하고 1917년 가족과 같이 만주 봉천성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환인현(桓仁縣) 환남지단(桓南支團)의 검찰원으
김성은 / 金聖恩 [종교·철학/개신교]
1881-196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기독교인. 본적은 전라북도 군산부(群山府)이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김병수(金炳洙)·김수영(金洙榮)·박연세(朴淵世)·양기준(梁基俊)·양성도(楊成道)·유한종(劉漢鍾)·유희순(兪熙淳)·이두열(李斗悅
김성택 / 金聖澤 [역사/근대사]
1897-1950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안주 출신. 안주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0년 6월에 대한독립단과 대한청년연합회의용대가 합류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이 조직되자 결사대원이 되었다. 1920년 8월 미
김성호 / 金聖灝 [역사/근대사]
189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투옥되었다.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정의단 임시군정부에 가입, 활약하였다. 1920년 9월 1일 국내에 잠입했다가 체포되어 징역 15년 언도를 받고, 마포·신의주에서 복역하였다.
김세용 / 金世用 [역사/근대사]
1907-1966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공주. 대구 출신. 1940년 4월 중국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하였으며, 그뒤 광복군으로 귀속되었다. 그뒤,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특과총대원대 한청반(中央戰時幹部訓練第四團特科總大員隊韓靑班)에서 군사
김세탁 / 金世鐸 [역사/근대사]
1874-1920년. 독립운동가. 일명 봉수(鳳洙). 평안북도 정주 출신. 신민회(新民會)회원으로 1911년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징역 5년을 언도받아 복역하던 중 1913년 제2심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1914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
김세환 / 金世煥 [역사/근대사]
1889-1945년.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중앙지도체 48인 가운데 한 사람. 경기도 수원 출신. 보성중학교와 일본 주오대학을 졸업한 뒤 수원상업회의소에 근무하였다. 미국인 선교사 밀리의 후원을 받아, 수원의 삼일남녀학교(三一男女學校)를 설립하여 후진교육에 전념하
김수남 / 金壽男 [역사/근대사]
1900-1967년. 독립운동가. 전라북도 군산 출신. 1919년 3월 22일 군산공립보통학교 방화사건을 주동하였다. 군산에서는 3월 5일 영명중학교 학생들과 군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 이래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만세시위운동이 계속되었다. 특히, 3월 12일의
김순애 / 金淳愛 [역사/근대사]
1889-1976년. 독립운동가·교육자. 황해도 장연 출신. 아버지는 성승(聖勝)이며, 어머니는 김성은(金聖恩)이다. 송천학교를 마치고 상경,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 초량소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를 몰래 가르쳤다.
김순종 / 金順鍾 [역사/근대사]
1899-1972.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공산주의자. 자는 익성(翼成), 호는 고봉(孤峰)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구좌면(舊左面) 하도리(下道里) 출신이다. 제주도 구좌면 세화리(細花里)로 이주하여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1930년 3월 세화리 문도배(文
김순탁 / 金淳鐸 [역사/근대사]
1895-1938.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교육자·언론인. 호는 양천(養泉)이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조천리(朝天里) 출신이다.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신명사숙(神明私塾) 교사로 지냈다. 제주 조천에서 일어난 1919년 독립만세운동은
김순희 / 金淳熙 [역사/근대사]
1908-193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현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1929년 3월 김태래(金泰來)·이학종(李學鍾)·정관진(丁寬鎭)·한경석(韓慶錫) 등과 함께 조선학생전위동맹(朝鮮學生前衛同盟) 결성에 일조한
김승곤 / 金勝坤 [역사/근대사]
191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민(黃民)·호영(胡英)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본적은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담양읍(潭陽邑)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서울 성동구(城東區) 금호동(金湖洞)이다. 1933년 중국 망명 후 9월 1일 입교
김승기 / 金勝基 [역사/근대사]
1924-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이산면(伊山面)이고, 거주지도 경상북도 영주이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강제 징용과 각종 수탈을 만행하자, 일본의 강압적인 행위에 분노하여 야학 교사로 활동을 하는 한편 일본
김승만 / 金承萬 [역사/근대사]
미상-1935. 독립운동가. 호는 죽림(竹林).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뒤에 신의주로 이거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만주 안동현에서 이륭양행(怡隆洋行) 주인인 영국사람 쇼우(Show, G.)의 집을 근거로 여순근(呂淳根)·김두만(金斗萬)·오동진(吳東振)·홍
김승민 / 金升旼 [역사/근대사]
1872-1931.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함주 출신. 1906년 비서감(祕書監)으로 재직할 때 항일의병과 내통했다는 소위 밀칙사건(密勅事件)에 관련되어 2년간 복역하였다. 1909년 헤이그특사사건에 연좌되어 다시 6개월간 복역한 뒤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0년 봉천(
김승빈 / 金承彬 [역사/근대사]
1895-198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명은 김병주(金炳疇)이다. 출신지는 평안남도 강서이다. 부친 김경서(金慶瑞)와 모친 박씨(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0년(융희 4)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1915년 서울의 구황실 근위대에 입대해 근무하였다. 1
김승옥 / 金升玉 [역사/근대사]
1889-196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전라북도 고창(高敞) 출신이다. 1919년 3월 19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고창읍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오동균(吳東均)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국민휘보’, ‘조선독립가’ 등 문서를 등사하며 추진하다
김승학 / 金承學 [역사/근대사]
1881-196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07년 정미조약 체결 때 서울 종로에서 반대연설을 하였으며,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평북독판부 국내특파원으로 선발되어 평안도·황해도일대에 연통제를 조직하고 88개소에 달하는 독립단 지단을 설치, 운영하였다.
김시백 / 金時伯 [역사/근대사]
1887-1950. 항일기의 의병장.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영월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1908년 소모장으로서 강원도·경상북도·충청북도 일대에서 의병모집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결국 영주에서 붙잡혀 징역 10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다. 건국포장
김시숙 / 金時淑 [역사/근대사]
1880-193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여성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 출신이다.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한 후, 숙부 김문주(金汶柱)의 권유로 40세의 늦은 나이에 글을 배워, 개화여성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여수원(
김시용 / 金時容 [역사/근대사]
1906-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제주도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早稻田] 대학에 입학하였다. 1928년 재학 중 항일학생단체인 재일조선청년동맹(在日朝鮮靑年同盟)에 가입하였다. 1929년 재일조선청년동맹에서 발행한 《조선청년(朝鮮靑年)》에
김시은 / 金時殷 [역사/근대사]
1887-1957.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농산(聾山)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제주도 신좌면(新左面) 출신이다. 1919년 제주도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한 14명 중 한 사람이다. 서울에서 3·1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귀향한 조카 김장환(金章煥)
김시점 / 金時漸 [역사/근대사]
1882-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정주(定州) 곽산(郭山)이다.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1913년 3월 20일 무죄로 출옥한 후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1919년 만주 안동현(安東縣)에서 김승만(金承萬)·오
김시형 / 金時馨 [역사/근대사]
1894-195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배천(白川)이고, 본적은 평안북도 용천(龍川)이다. 1919년 3·1 독립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1920년 11월 임시 정부 연통제 평안북도 독판부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광복
김시황 / 金時晄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중량(仲亮).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20년 김동식(金東植, 일명 攸信)·한우종(韓禹鍾)·백운기(白雲起)·김도원(金道源)·조원세(趙元世)·박초식(朴楚植)·박종식(朴宗植) 등과 함께 의주군의 동암산(東巖山)에서 의용군을 모집, 훈련하여
김신근 / 金信根 [역사/근대사]
1878-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홍원(洪原)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이다. 1919년 2월 중국 길림성 용정촌(龍井村) 영신학교(永新學校)에서 기독동지청년회(基督同志靑年會)를 조직하고 연
김여진 / 金麗鎭 [역사/근대사]
185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수안(遂安)이다. 천도교구장이었던 안봉하(安鳳河)를 중심으로 나용일(羅龍一)·장성도(張聖道)·김동선(金洞宣)·이달하(李達河)·안창식(安昌植)·홍길재(洪吉載)·홍두익(洪斗益)·이응호(李應浩)·이윤식(李潤植) 등과
김연순 / 金演淳 [역사/근대사]
1881-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기독교인.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盈德)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신기동(新基洞) 구장 이현설(李鉉卨)과 이수각(李壽珏)·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