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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복 / 妓女服 [생활/의생활]
기녀가 입던 복식. 기녀란 의약이나 침선의 기술 및 가무(歌舞)의 기예를 익혀서 나라에 필요할 때 봉사하던 여성이다. 그들은 천인계층에 속하였지만, 가무자로서의 구실과 신분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그 복식의 내용과 형식이 다양하였다. 기녀의 복식은 저고리와 치마만으로 대신
기성복 / 旣成服 [생활/의생활]
표준화된 치수와 일정 디자인을 가지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으로 제품화된 의복류의 총칭. 소비자가 필요할 때 곧 사서 입을 수 있고, 대량 생산에 의해 기획된 상품이므로 값이 저렴하나, 획일적인 형태이므로 선택 범위가 좁다는 점과 다량 생산으로 인하여 섬세한 부분에 대한
김덕령장군의복 / 金德領將軍衣服 [생활/의생활]
1965년 광주광역시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복식류. 1965년 7월에 광주광역시 무등산 이치(梨峙)에 있던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16세기말 선조
김덕원묘 출토 의복 일괄 / 金德遠墓出土衣服一括 [생활/의생활]
1972년 서울에 소재한 조선 후기의 문신 김덕원(金德遠)과 그의 부인 전주이씨의 합장묘에서 출토된 17세기 후반의 복식류 53점. 출토된 유물은 상복겉[常服表] 1점과 상복안[裏] 1점(단령 1점에 해당한다), 철릭 1점, 창의류 12점[창의 2점, 중치막 8점, 소
김함의 묘 출토의복 / 金涵─墓出土衣服 [생활/의생활]
1985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김함(金涵: 1568∼1598)의 묘(墓)에서 출토된 복식 및 부장품 17점. 김함의 묘에서 발굴된 3점의 포(袍)류는 모두 장옷으로 면주(綿紬) 누비장옷 1점, 화문단 누비장옷 1점, 무명 솜장옷 1점이 있다. 뒷길이는 116
김흠조부부묘출토유물 / 金欽祖夫婦墓出土遺物 [생활/의생활]
조선 중종대의 문신 김흠조(金欽祖) 부부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 일괄. 분묘의 형태는 동묘이곽형(同墓異槨形)의 합장묘였는데, 출토유물 중 복식류는 단령(團領) 7점, 직령(直領) 2점, 답호(조끼류) 11점, 철릭 13점, 상의류 6점, 바지류 8점, 모자 1점, 도아
까치두루마기 [생활/민속]
아이들이 까치설빔으로 입는 오색 옷감으로 지은 두루마기. 까치두루마기는 다섯가지 색으로 만들어진 옷으로, 오방색(五方色) 중 가운데 색인 황색을 앞 중심의 겉섶에 사용하고, 길은 연두색으로 만들었다. 남자아이는 깃·고름·돌띠를 남색으로 하고 무를 자색으로 하며, 여자아
나장복 / 羅將服 [생활/의생활]
조선시대 하부군졸인 나장의 복식. ≪경국대전≫에 나장은 검은 두건인 조건(皁巾) 쓰고 청색의 소매없이 만든 쾌자와 같은 옷인 청반비의(靑半臂衣)를 입으며, 납작하게 만든 끈으로 된 띠인 조아(條兒)를 맨다고 하였다. 그리고 형조·사헌부·전옥서의 나장은 검고 둥근 깃의
난삼 / 襴(幱)衫 [생활/의생활]
조선시대에 유생·생원·진사 등이 입던 예복. 난삼은 고려 광종 때 과거제도와 함께 전래되어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에게 입게 한 것으로, 조선 초기에 와서야 정착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청색 바탕에 검은 선을 둘렀고, 세종 때에는 옥색 바탕에 청색 선을 둘렀고, 선조 때에
남이흥장군일가유품 / 南以興將軍一家遺品 [생활/의생활]
충청남도 당진시 모충관(慕忠館)에 소장되어 있는 남이흥(南以興:1540~1627) 장군과 의령남씨(宜寧南成) 선·후대의 유품 41점. 남이흥은 27세 때 무과에 합격한 후, 49세에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진무(振武) 1등 공신이 되었으며 52세에 병마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