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지명 > 고지명 총 60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지명 > 고지명
송변 / 宋邊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거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신라의 송변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남수(南垂)로 고쳐 거제현의 영현으로 하였다. 1271년(원종 12) 왜구에게 이곳을 점령당하자 주민을 거창군 가조현(加祚縣)으로 옮겨 오랫동안 주민이 살지 않았으나, 조선 세종 때 주민의 거주를
송산 / 松山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문천 지역의 옛 지명. 『대동여지도』에 실린 것으로 미루어 보아 덕원면 송상리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본다. 본래 신라의 부사달현(夫斯達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송산으로 고쳐 삭주 관할의 정천군(井泉郡)의 속현으로 하였다. 고려 때는 이곳에 용진진(龍津鎭)을 설
송산성 / 松山城 [지리/인문지리]
삼국시대의 성.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와 고구려본기 기록에 따르면, 607년 5월 고구려가 송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했고, 이어 석두성(石頭城)을 습격하여 남녀 3천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고구려가 송산성 공격 실패후 곧바로 석두성 습격을 감행하므로,
송생 / 松生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옛 지명. 송생 남쪽에 있는 안덕(安德)이 고구려의 이화혜현(伊火兮縣), 서쪽의 청부현(靑鳧縣)이 고구려의 청기현(靑杞縣)이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초기에는 송생현이 고구려의 영토로 추측된다. 송생은 본래 신라의 소라현(召羅縣)이었는데, 1018
송정 / 松汀 [지리/인문지리]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역을 일컫는 지명. 본래 백제의 무진주(武珍州)이었는데, 조선시대까지 소지면(所旨面)·우산면(牛山面)·고내상면(古內廂面) 등의 3개면에 걸쳐 있었다. 조선 중기에 이곳에 병영(兵營)을 설치하였는데, 이 병영과 관련된 고내상성(古內廂城)의 둘레는 1,
송촌활달 / 松村活達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평택 지역의 옛 지명. 백제 때 부산(釜山)으로 고쳤고 신라 경덕왕 때 진위현(振威縣)으로 고쳐 수성군(水城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백제의 국경지대여서 이곳에 부산성(釜山城)이 있었다. 지명의 유래는 ‘긴 솥과 같이 생긴 분지’라는 데서 나왔다. 지금의 진위면
송탄 / 松炭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평택 지역에 있었던 지명. 송장과 탄현이 합쳐져 생긴 행정지명이다. 고구려 시대 진위현은 본래는 부산현(釜山縣, 475∼551)이었으며, 당은군(唐恩郡)의 영현이었다. 간달부곡 또는 금산현(金山縣)이라 하기도 하였으며, 송촌활달(松村活達)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송파나루 / 松坡─ [지리/인문지리]
서울특별시 송파구 송파동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한강변의 나루. 본래 이곳은 서울의 외곽을 지키는 송파진(松坡鎭)이 있어 별장(別將)이 다스렸는데, 별장은 송파나루 외에도 삼전도(三田渡)·동잠실(東蠶室)·광진(廣津)·독음(禿音) 등의 나루터를 함께 관할하였다. 이곳은
송파시장 / 松坡市場 [지리/인문지리]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호수 부근에 있던 나루터를 중심으로 서던 시장. 이 지역 부근에는 본래 조선 초기 이래 삼전도(三田渡)가 나루터로 개설되어 있었지만 병자호란 이후 쇠퇴하였으며, 대신 이 송파진이 주된 나루가 되어 수어청(守禦廳)에서 파견된 별장(別將)에 의해 관리
송현 / 松峴 [지리/인문지리]
평안남도 중화 지역의 옛 지명. 『삼국사기』 지리지 및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에 의하면 본래 고구려의 부사파의현(夫斯波衣縣, 또는 仇史縣)이었는데 신라 헌덕왕 때 송현현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되어 있으나, 『대동지지(大東地志)』의 기록에는 757년(경덕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