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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종교·철학
유치목 / 柳致睦 [종교·철학/유학]
1771년(영조 47)∼1836년(헌종 2). 조선 후기 유학자. 조부는 유정춘, 부친은 유헌조이다. 외조부는 황재대, 처부는 강종흠이다. 1814년(순조 14) 식년시에 병과 26위로 급제뒤, 병조좌랑·사서·교리·형조참의·사간원 사간·김해부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유치선 / 兪致善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3∼?). 부사과·대사성·부총관 등을 거쳐 1867년 경기도관찰사로 있을 때 《기계유씨세보》를 중간하고, 1874년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참의·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유치호 / 柳致皜 [종교·철학/유학]
1800년(정조 24)∼1862년(철종 13). 조선 후기 학자. 조부는 유정휴, 부친은 유후문이다. 모친은 의성김씨이다. 유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45년(헌종 11) 학문과 덕행으로 천거되어 태릉참봉이 되었으나 바로 사직하였다. 저서로는《태극혹문》은 주돈이
유태좌 / 柳台佐 [종교·철학/유학]
1763(영조 39)∼1837(헌종 3).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사춘, 어머니는 이억지의 딸이다. 1794년(정조 1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정원가주서가 되고 주자서 3책을 하사받았다. 이후 우승지,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학서문집> 20
유태형 / 柳泰亨 [종교·철학/유학]
1568∼1642. 조선 중기 문신. 부친은 유덕신이다. 유태형은 김장생의 문인이다. 인조 조에 학행으로 참봉에 제수되어, 한성부참군, 별제좌랑을 지냈으며, 관계는 통훈대부에 이르렀다. 아들로는 유도, 유상, 유합을 두었다. 우암 송시열의 6세손인 강재 송치규가 그의
유필영 / 柳必永 [종교·철학/유학]
항일기의 학자(1841∼1924). 가학인 역학을 계승, 발전시켰고, 스승 유치명의《정재집》원집과 속집을 편집하였다. 1919년 파리만국평화회의때 유림들과 독립청원서를 보내어 항일 의지를 확고히 밝혔고, 기미년만세사건에 연루되기도 하였다. 저서로《서파문집》이 있다.
유학 / 儒學 [종교·철학/유학]
공자의 학설을 받드는 유가의 학문.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지배사상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십학 중에 가장 우위에 있었다. 조선시대의 유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는 서울의 성균관·사학과 지방의 향교가 있었다.『경국대전』에 의하면 성균관유생(成均館儒生) 200, 사학유생
유한준 / 兪漢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장가·서화가(1732∼1811). 영조 때 김포군수와 형조참의를 지냈다. 당대에 뛰어난 문장가로 손꼽혔으며 저서로 《저암집》이 있다.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고 하며 당시 화가들의 그림에 제발문을 많이 썼다.
유허일 / 柳虛一 [종교·철학/원불교]
1882년(고종 19)∼1958년. 원불교의 교무. 1932년에 박중빈 제자가 되었고, 그 이듬해 출가하여 전무출신이 되었다. 원불교 중앙총부 학원교무·공익부장·교감·예감·총무부장·순교감·교정원장 등을 역임, 1935년에는 수위단원에 피선되었다. 66세 때 재단법인 원
유현시 / 柳顯時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667∼1752). 45세 때 생원시에 장원하였으나 대과를 포기하고 후진교육에 힘썼는데, 66세에 안동부의 추천으로 안동부내 도훈장이 되었고, 1749년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만년에 《심경》, 《근사록》을 연구하였다. 저서는《호와유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