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장두언 / 張斗彦 [역사/근대사]
1881-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중국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에 있는 국민회(國民會)의 통신부장(通信部長)으로 활약하였다. 일본군에 체포되는 과정에 저항하다가 화룡현 서동포(西洞浦)에서 피살되었다. 1991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
장두현 / 張斗鉉 [경제·산업/산업]
1874-1938년. 실업인. 서울 출신. 한말에는 주로 농상공부의 관계에서 관직을 맡아오다가 국권상실 후 실업계에 투신하였다. 조선취인소(朝鮮取引所)이사를 거쳐 1920년에 조진태(趙鎭泰) 등과 함께 민족자본형성을 위하여 천일은행(한국상업은행의 전신)을 설립하였다.
장두환 / 張斗煥 [역사/근대사]
189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7년 대한광복단에 입단하여 각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고 조달하는데 힘썼다. 이종국의 밀고로 발각되어 붙잡혔고, 복역하던 중 1921년 4월 옥사하였다.
장두희 / 張斗熙 [역사/근대사]
1883-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풍산면(豊山面)이다.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독립만세운동에 고무되어 김정익(金正翼)·손영학(孫永學)·김정연(金正演) 등과 함께 거의(擧義)할 것을 다짐하였다. 1919년 3월 2
장만 / 張晩 [종교·철학/유학]
1566(명종 21)∼1629(인조 7). 조선 후기의 문신. 철견의 증손, 할아버지는 계문, 아버지는 기정, 어머니는 조광침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생원·진사 합격, 1591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승문원의 벼슬을 거쳐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장만걸 / 張萬杰 [종교·철학/유학]
1654년(효종 5)∼1717년(숙종 43). 조선 후기 유학자. 장말손의 후손, 부친은 장윤병이다. 장신, 장진에게 가학으로 배웠으며, 자라서는 나은 이동표·나암 이유장을 사사하였다. 주로 예학에 몰두하여《가례익해》·《의례문답》·《비요집람》를 저술하였다. 문집으로《
장말손 / 張末孫 [종교·철학/유학]
1431(세종 13)∼1486(성종 17). 조선 전기의 문신. 순효의 증손, 할아버지는 경원, 아버지는 안량, 어머니는 고승안의 딸이다.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463년 승문원박사를 거쳐 한성참군·사헌부감찰·함길도평사를 역임하였다. 1467
장면 / 張勉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정치가(1899∼1966). 1917년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 1919년 서울기독교청년회관 영어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936년 동성상업학교 교장이 되었다. 1946년 정계에 입문, 1955년 신익희·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여 최고위원이 되었다. 1
장복겸 / 張復謙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옥경헌유고』를 저술한 문인. 할아버지는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장개세(張蓋世)이고,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장담(張膽)이다. 54세 때인 1670년(현종 11)에는 흉년이 들어 민생이 어려워지자 조정에 「구페소(救弊疏)」를 올렸다. 상소를 통해 환상(還上) 제
장복추 / 張福樞 [종교·철학/유학]
1815년(순조 15)∼1900년(광무 4). 조선 후기 유학자. 1881년(고종 18) 천거되었고 장원서별제·경상도도사 등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평생 학문만을 탐구하였다. 교유 인물로는 이진상·정삼석·김진우·곽종석·허훈 등이 있는데, 이들과는 학파를 이루어 학문적으